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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관 담당자의 세계…“하루 5~6명까지 만나…술 탓 속병은 기본”
기업별 수십에서 수백명까지…CR팀 주로 관장
업종에 따라 적극적ㆍ소극적, 공세적ㆍ수세적
“필요에 따라 官과 정보 주고받는 공존공생관계”



[헤럴드경제=산업부]국내 4대 그룹 중 한 곳에서 10년 가까이 대관 업무를 맡고 있는 김모(40) 차장. 전날 관련 부처 공무원과 마신 술 탓에 머리가 아프지만,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해당 과장에게 들은 정보를 복기해서 상관에게 보고서를 제출한다. ‘A급 정보’이거나 기업과 직결된 정보일 경우 민감해진 최고경영자(CEO)에게 불려가 직접 설명할 때도 있다.

아직 12월 초순이지만 김차장의 점심ㆍ저녁 약속은 휴일을 제외하고는 연말까지 거의 꽉 찼다. 오늘도 점심에는 국세청, 저녁에는 검찰 관계자와 밥을 먹어야 한다. “차(茶) 약속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5~6명까지 만날 때도 있습니다. 체력이 필수죠. 낮술도 마다하지 않다 보니 저 같은 대관 담당자들은 속병 하나씩은 기본으로 달고 다닙니다.”

최근 ‘정윤회 문건’ 관련으로 사람들 사이에 주요 이슈가 된 대관(對官). 한자 그대로 관(官), 즉 국회, 관공서, 공공기관 등을 상대하는 기업 내 조직이다. 기업 경영에 영향을 주는 정책 변화를 사전에 감지하고, 정책 결정 기관에 미리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유리한 쪽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입법(국회)ㆍ사법(법원)ㆍ행정(정부), 3부, 공공기관,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과 끊임없이 접촉하고 소통한다. 로비와 정보 수집이 바로 대관 조직의 주요 업무다.

주요 그룹들은 부사장이나 전무를 팀장으로 하는 대관 조직을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수백명 이상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별 순수 대관 담당자는 20~30명에 불과하지만, 주요 이슈가 발생할 경우 홍보, 구매, 재무, 영업. 기획 등 전방위적으로 대관 활동을 펼친다”며 “계열사나 지방 사업장 단위에서도 대관 활동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대관을 담당하는 조직은 대관팀이라고 부르는 기업은 거의 없다. 기획팀, 지속가능경영팀, 정책팀, 공정거래팀 등의 모호한 호칭으로 외부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보통이다. 버젓이 영업팀이라는 명함을 갖고 대관 업무를 보는 담당자들도 있다.

그룹 조직은 주로 지배구조, 독점 규제 등을 관장하는 공정거래위원회나 사정기관을, 계열사는 국회, 부처, 관련 협회 등 공공기관을, 지방 사업장은 광역ㆍ기초자치단체와 지방 사정기관을 각각 챙기는 경우가 많다. 보통 CR(CRㆍCorporate Relation)팀이 대관 담당 조직을 이르는 호칭이 된다.

업종에 따라 대관의 비중은 차이가 난다. IT(정보기술)ㆍ정유ㆍ항공ㆍ유통 등 내수나 규제 산업의 경우 대관에 꼼꼼하게 신경쓰는 반면 전자ㆍ조선ㆍ광고ㆍ화학 등 3부, 사정기관과 부딪히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은 산업은 그만큼 대관의 비중이 낮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업종 특성 상 사업과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이나 규제를 도입하는 경제 관련 부처 위주로 활동한다”고 설명했다.

업종에 따라 대관 방식이 공세적일 수도 있고 수세적일 수도 있다. 자동차 업계의 경우 국토교통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상대하며 규제, 환경, 노동 등의 이슈에 대응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연비, 저탄소협력금 등이 대관의 큰 이슈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 규제에 민감한 정유의 경우 수세적일 수 밖에 없다. 국정감사 때 CEO나 오너가 증인으로 채택되거나, 무리한 의원들의 요구에 대응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대관 조직만이 3부, 사정기관, 공공기관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이들 관(官) 조직도 기업들을 쥐고 흔들기에 대관 조직을 활용한다. 일종의 상부상조인 셈이다.

한 4대 그룹 대관 담당자는 “의원들이 국정감사 때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부르는 이유는 기업들이 CEO나 오너들을 증인에서 빼달라고 읍소해서, 이를 들어주고 후원금과 바꾸는 이른바 ‘기브 앤 테이크’를 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관 조직과 관 조직은 서로가 부채의식을 갖게 해서 정보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일종의 공생 관계”라고 말했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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