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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빈손으로 죽겠다’...기부 위해 손잡은 억만장자들
거물들의 의기투합
“‘더 기빙 플레지’ 결성
“빌게이츠 자산 95%
“버핏 99% 기부 서약
“올 6명 합류 128명 확대

“억만장자 공개적 기부로
“다른사람 동참 유도”
“엘리슨 등 릴레이 가입도


[특별취재팀=김현일 기자]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 마이클 블룸버그, 래리 엘리슨, 엘론 머스크….

명단만 봐도 화려한 이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富)’와 ‘기부’다. 이들은 2010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워런 버핏이 주도해 만든 자선단체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재단의 멤버들이다.

기부도 이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ㆍ협동) 시대’다. ‘더 기빙 플레지’는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내놓기로 서약한 개인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결성됐다. 빌 게이츠는 재산의 95%를, 워런 버핏은 99%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이밖에도 세계 억만장자들의 기부 서약서가 이곳 ‘더 기빙 플레지’에 접수됐다. 이쯤 되면 명사들이 모인 일종의 ‘기부클럽’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종교단체가 설립한 공익재단과는 그 성격이 다르며 혼자 조용히 선행을 베풀던 방식에서도 벗어나 있다.

▶배턴 주고받는 억만장자들의 릴레이 기부 행진=출범 첫해 52명의 가입자로 시작한 ‘더 기빙 플레지’는 이후 2011년 17명, 2012년 22명, 2013년 31명 그리고 올해 6명이 추가로 합류하면서 총 128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선행에 동참하는 명사들이 꾸준히 늘어난 데에는 ‘더 기빙 플레지’에 먼저 가입한 이가 다른 동료 억만장자의 가입을 이끌어내는 식으로 릴레이 행진이 이어진 덕분이다.

518억달러의 자산으로 부호 순위 세계 5위에 올라 있는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 오라클 CEO는 워런 버핏의 설득 때문에 ‘더 기빙 플레지’에 가입했다. 그는 “기부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하는 것이 내 원칙이었다”며 “그런데 어느 날 버핏이 찾아와 재단 가입을 권유하면서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버핏은 당시 엘리슨에게 ‘억만장자들이 기부행위를 공개적으로 해야 다른 사람들의 기부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슨은 이에 동감해 결국 2010년 ‘더 기빙 플레지’에 이름을 올리고 재산 절반 기부를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2011년 작고한 테드 포스트만(Ted Forstmann) IMG 회장도 이전까진 조용히 기부를 해왔지만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가 ‘아직 기부를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 이름을 밝혀 달라’고 설득한 끝에 재단에 이름을 올렸다. 354억달러의 자산가인 블룸버그 자신도 평소 “나의 기부로 다른 사람의 기부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다”며 선행에 앞장서온 인물이다.

투자회사 칼라일그룹의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David Rubensteinㆍ자산 29억달러)도 ‘더 기빙 플레지’의 일원이 돼 달라는 빌 게이츠의 연락을 받고 매우 영광스러웠다며 단번에 요청을 수락했다.

현재 ‘더 기빙 플레지’ 회원 128명 중 미국인이 104명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영국(6명)과 캐나다(3명)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최연소 회원은 2010년 26세에 가입한 마크 저커버그와 더스틴 모스코비치다. 동갑내기 친구인 두 사람은 페이스북도 공동 창업하고 ‘더 기빙 플레지’에도 동시에 가입했다.

▶그들이 기부 서약서에서 밝힌 내용은…=‘더 기빙 플레지’ 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각자 기부 서약서를 작성한다. 서약서에는 사후 재산 절반 이상을 내놓겠다는 약속과 함께 기부를 결심하게 된 이유 등이 담겨 있다.

이들 서약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특권(privilege)’ ‘책임감(responsibility)’ ‘환원(give back)’ ‘미래 세대(future generation)’ ‘변화(change)’ 등으로 압축된다. 대부분의 기부자들은 서약서에서 ‘좋은 가정 환경과 사회 시스템의 보호 덕분에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것을 ‘특권을 누렸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사회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더욱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자라나는 미래 세대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나길 바라며 상속 대신 기부를 택했다고 밝혔다.

‘더 기빙 플레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됐을 무렵 재산의 절반 이상을 내놓기로 약속한 폴 앨런(Paul Allenㆍ자산 171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도 서약서에서 “기부로 미래 세대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지 카이저(George Kaiserㆍ자산 102억달러) BOK 파이낸셜 회장 역시 “나는 좋은 부모 만나 풍족한 가정에서 자랐다”며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도덕적 책임감은 더 뚜렷해졌다”고 했다.

이처럼 억만장자들이 사회 문제와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기부를 통한 연대’의 흐름이 나타났다. ‘더 기빙 플레지’ 운동도 그중 하나다. 혼자만의 기부로는 빈곤, 교육, 환경 등 전 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다수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으로 몸에 밴 ‘기부 DNA’
=부자들이 기부를 결심하게 된 데는 가정교육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2010년 ‘더 기빙 플레지’에 가입한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ㆍ자산 30억달러)는 5대째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기부는 록펠러 가문의 오랜 전통이다. 2006년 뉴욕타임스는 데이비드 록펠러가 개인적으로 기부한 액수가 9억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1억달러, 하버드대에 1억달러, 록펠러대에 1억달러 등 그의 기부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영화 제작자이자 존 폴 미첼 시스템의 최고경영자인 존 폴 디조리아(John Paul DeJoria)는 어머니의 가정교육이 성인이 돼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그의 어머니는 디조리아 형제에게 “너희들이 얼마를 갖고 있든 너희보다 더 궁핍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절대 잊지 마라”고 강조했다. 디조리아는 2012년 재산의 절반을 사후에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더 기빙 플레지’에 가입했다. 현재 그의 재산은 33억달러다.

헤지펀드 매니저 윌리엄 애크먼(William Ackmanㆍ자산 17억달러)은 “어릴 적 기부의 중요성을 강조한 아버지의 가르침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며 “요즘 기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행복하다”고 밝혔다. 애크먼도 2012년 ‘더 기빙 플레지’의 회원이 됐다.

▶아시아ㆍ아프리카 부자들도 동참, 한ㆍ중ㆍ일은 아직…=억만장자들의 ‘훈훈한 콜라보레이션’이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더 기빙 플레지’는 지난 5년간 기부문화를 전 세계에 확산시켰다.

아시아 국가 중 인도에선 2명의 갑부가 재산 기부를 약속했다. 인도 IT업계의 거물인 아짐 프렘지(Azim Premji) 위프로 테크놀로지스 회장은 지난해 ‘더 기빙 플레지’에 참여했다. 식용유 회사를 물려받아 세계 굴지의 소프트업체로 키워낸 프렘지 회장은 현재 157억달러의 자산을 갖고 있다. 그는 평소 인도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교육에 투자해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아짐 프렘지 재단을 통해서도 학교를 설립하는 등 인도의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ㆍ자산 17억달러) 코슬라 벤처스 대표는 부인과 함께 2011년 ‘더 기빙 플레지’에 가입했다. 그는 자바 기술을 개발한 소프트웨어업체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창업주이기도 하다. 인도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빈곤 국가에 태양광 패널을 공급하거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에너지ㆍ교육 사업에 관심이 많다.

그 밖에 대만(새뮤얼 인ㆍ자산 40억달러)과 인도네시아(타히르ㆍ자산 20억달러), 말레이시아(빈센트 탄ㆍ자산 14억달러), 파키스탄(아리프 나크비)에서도 각각 1명씩 가입자가 탄생했다.

올해 들어선 아프리카에서도 기부 소식이 들려왔다. 짐바브웨의 최대 이동통신사 에코넷 와이어리스를 경영하고 있는 스트라이브 마시이와(Strive Masiyiwa) 회장은 자산이 6억달러로, 빌리어네어는 아니지만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 한국과 중국, 일본에선 ‘더 기빙 플레지’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부호가 아직까지 없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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