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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창의적 기부’…거부들의 GIVE
빌리어네어 1645명 6조4000억$ 집중…공존 위해 선택한 ‘기부’
‘창조적 자본주의시대’ 숲 사들여 환경보호하고 자산 99% 환원도



[특별취재팀=성연진 기자] 6조4000억달러(약 7100조원). 올해 포브스가 자산 10억달러(한화 1조1117억원) 이상 ‘빌리어네어’ 1645명의 개인 자산을 합친 숫자다. 이는 1992년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을 당시 3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이기도 하다.

지난 20년간 60억명이 넘는 세계 인구 가운데, 극소수의 부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소수의 거부들이 누리는 호사로움에 따가운 시선 역시 이어졌다. 부호들에겐 ‘공존’을 위한 선행이 필요했다. 빌리어네어의 프로필에 ‘자선가(philanthropist)’가 꼬리표처럼 붙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혹자는 앤드루 카네기나 존 디 록펠러 등 과거에도 대부호들이 사회복지사업에 참여해 왔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자선의 개념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빌 게이츠는 2008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기조연설에서 “자본주의는 부자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이츠는 이를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라고 이름을 붙이고 전 세계의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호의 선행이 사회적 책임 환원이 아니라 의무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세계 1위 부호 자리를 다투는 워런 버핏도 이 생각에 동의했고, 둘은 동료 부호들을 설득해 기부 약속을 받아내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자산의 90%를 기부하겠다고 서약하는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는 이렇게 탄생했다.

창조적 자본주의란 단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전의 기부와는 목적과 방법도 달라졌다. 낙후된 지역사회의 불행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생색용 기부가 아니라, 더 꾸준한 방법으로 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식의 기부를 찾아나서게 됐다.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기부가 의무화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하나를 사면, 하나를 기부하는(Buy one, Give one)’ 비즈니스다.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신발 한 켤레를 사면 빈곤국 어린이에게 한 켤레를 기부하는 ‘탐스(TOMS) 슈즈’를 론칭했다. 마이코스키의 자산은 3억달러로, 빌리어네어에는 한참 못미친다. 탐스는 최근 신발과 같은 방식의 커피 판매도 시작했다. 탐스는 인류를 위한 물(Water for people)이란 비영리 기구와 협업해 탐스 커피의 판매 수익금으로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해줄 파이프 시스템과 빗물 수거 탱크 등을 지을 계획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단점을 역공하는 발상의 기부도 이어졌다. 자연환경의 개발과 보호라는 갈등에서 ‘보호’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 아예 자연 그 자체를 사들이는 것이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헤드(HEAD)의 회장인 요한 엘리아쉬는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공동 창업자인 더글라스 톰킨스도 노스페이스 지분을 매각해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친 파타고니아 일대 숲을 사들였다.

해외 부호들의 이 같은 선행은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매년 겨울철엔 김장을 담그고 홍수 등 자연 재해에는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그룹 차원의 재단을 만들어 몇몇의 교육을 돕는 다소 ‘뻔한(?) 방식’의 선행은, ‘창의적 자본주의’가 이야기하는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화가 아니다.

포브스는 올해 아시아에서 선행에 나선 48인을 꼽았다. 아시아에서 경제 규모가 3위권이라 자부하는 한국에서 꼽힌 이는 단 4명. 불행히도 이 가운데 ‘빌리어네어’는 아무도 없었다. 기부 금액보다도 회사나 법인이 아닌 개인 재산을 기부한 ‘진정한 자선가’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정문술 전 미래산업 대표와 피겨여왕 김연아, 민남규 케이디켐 대표이사, 박희정 전 고려대 교수가 한국의 자선가로 꼽혔다. 정 전 대표는 카이스트에, 민 대표이사와 박 전 교수는 모교 고려대에 기부를 했다. 김연아 선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에게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포브스 빌리어네어에도 26명의 재계 오너들이 이름을 올린 나라다. 그러나 이들 중 그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도, 이베이의 피에르 오미디야르도 그리고 아프리카나 인도, 인도네시아 부호도 갖고 있는 ‘자선가(philanthropist)’로 설명되는 부호는 없다. 최근 국내 일부 IT 벤처부호가 벤처자선 기금을 조성하는 등의 색다른 움직임은 있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빌 게이츠는 “운 좋게도 큰 행복을 누리며 살아왔다. 그래서 사회적 책임감을 무겁게 느낀다”고 말했다.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와 자선활동을 위해 누가 더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 경쟁할 수 있다”며 기부경쟁을 선언했다. 이제 슈퍼리치들도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돈을 쓸 것인가’란 고민에 동참할 때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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