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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김석동] 한민족의 역사무대, 러시아 연해주
일제때 항일투쟁 무대였던 연해주
한민족 역사와 끊을 수 없는 인연
장차 한반도와 유라시아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 시대 개막 기대



지난 11월 말 러시아 연해주를 다녀왔다. 날씨는 몹시 추웠지만, 잊을 수 없는 우리역사의 땅이기에 우수리스크·핫산·블라디보스토크 등지 일대를 둘러봤다. 러시아 극동지구 동남쪽 끝에 있는 주가 연해주(프리모르스키지방)로 총 83개 러시아 연방주체 중의 하나다. 연해주는 면적이 16만4700㎢로 러시아 면적의 0.92%, 우리나라의 약 1.6배이며 약 200만명이 살고 있다. 주도(州都)는 블라디보스토크이며 우스리스크, 나홋카 등의 주요 도시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지로, 역사내 복선철로 사이에 모스크바까지 9288㎞라는 표지석이 철도건설의 대역사를 웅변하며 서 있다.

연해주는 지금은 러시아 땅이지만 한민족 역사와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를 가진 곳이다. 먼저 구한말부터 보자. 1863년 함경도지역 농민이 연해주로 이주를 시작한 이래 한인 이주가 지속적으로 늘었다. 1910년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애국지사와 독립 운동가들의 이주·망명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이로 인해 연해주를 중심으로 애국지사들의 조직적인 항일운동이 전개됐다. 연해주의 10만명이 넘는 한인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수십 단체의 독립군 수천명이 이 지역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일본군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이들은 수년간 일본군과 치열한 무장투쟁을 전개한다. 일제는 3·1운동 다음해인 1920년 4월 4~5일 연해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차단하기 위해 한인 학살과 방화를 자행해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서만도 300명 이상의 한인을 학살했고 수많은 애국지사를 체포·처형했다.

1937년 중일전쟁 중 러시아의 스탈린은 총 17만명이 넘는 한인을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실려 굶주림과 공포 속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인근 지역 등에 버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처참한 환경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연해주 등지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제 한인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지 150년이 넘었다. 모스크바, 연해주, 중앙아시아 등 구소련지역에 약 55만명이 살고 있으며 고려인 또는 카레이스키라고 불린다.

연해주는 한민족의 고대·중세 역사와도 뗄 수 없는 곳이다. 고조선의 역사무대였고, 이어 부여·고구려가 역사를 이어 온 곳이다. 그 후 698년 발해가 건국돼 한반도의 신라와 더불어 남북국시대를 전개하면서 역사를 써내려 간 곳이다. 지금도 연해주 여러 곳에서 발해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이번에 어렵게 크라스키노 성터를 찾았다. 이곳은 발해 5경중 동경용원부 수도인 중국 훈춘(흑룡강성)과 인접하고 있으며 발해의 염주성이 있던 곳이다.

발해는 대외관계가 활발했던 대제국으로 일본과 교역했던 일본도(日本道)가 여기서 출발했다 한다. 크라스키노 성터는 연해주 최남단 핫산군의 크라스키노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5㎞, 습지와 수풀사이를 통과해야 도착할 수 있는 동해에 인접한 곳에 있다. 발해시대의 성벽과 성문·옹성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구글어스를 통해 지도를 확대하면 명확한 성터 윤곽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이후 연해주는 북방민족이 건설한 금(金)·원(元)·청(淸) 이 차례로 지배하면서 우리가 배운 한민족 역사와는 멀어져 갔다. 이제는 역사에서조차 잃어버린 땅이 될까 걱정스럽다. 이곳 연해주는 한민족이 오랫동안 삶의 흐름을 이어왔고, 역사의 무대로 삼아 온 곳이다. 그리고 미래에는 한반도와 유라시아지역을 연결하는 대통로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앞으로 한반도종단철도(TKR)가 시베리아(TSR)·만주(TMR)·중국(TCR)·몽골(TMGR) 횡단열차와 연결돼 한반도에서 ‘철(鐵)의 실크로드’ 가 시작되는 시대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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