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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유가의 역설…强달러→신흥국 외환불안→디플레 악순환?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국제유가 하락은 ‘독이 든 성배’인가.

지난 6월이후 40% 넘게 폭락한 국제유가가 세계경제에 호재가 될 것이란 당초 기대와는 달리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유가하락에 따른 ‘강(强)달러’와 ‘엔저’가 신흥국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엔/달러환율은 8일 121.84엔까지 상승한데 이어 9일 120엔대에서 추이하고 있다.

셰일혁명에 힘입어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기대했던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견제에 따른 에너지 업체 타격과 정크본드(하이일드 채권) 시장의 충격에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디플레이션 공포에 빠진 유럽과 일본, 중국의 경제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세계경제는 ‘저유가의 덫’에 빠질 수 있는 지적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가 게재한 브렌트유 추이(왼쪽)과 JP모건신흥국통화지수.

공급 과잉에서 촉발된 저유가가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위축으로 이어지며 또다시 유가를 끌어내리고,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을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유가, 내년 저유가 전망에 4%이상 폭락=국제유가는 8일(현지시간) 쿠웨이트발(發) 저유가 전망에 4% 이상 폭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4.2% 하락한 배럴당 63.05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브렌트유도 4.17% 떨어진 배럴당 66.19달러를 기록했다. WTI는 올 들어 세 번째로 큰 낙폭을 보이며, 2009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중국 등 세계 경기 둔화로 내년은 올해보다 더 심한 저유가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비관론을 키웠다. 쿠웨이트 국영 석유기업의 타리크 자히르 최고경영자(CEO)는 “내년 국제유가가 배럴 당 65달러 수준에서 6∼7개월간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모건스탠리는 내년 브렌트유 평균 가격을 종전의 98달러보다 30%가량 낮춘 70달러로 제시하면서, 내년 유가가 43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OPEC發 3차 오일전쟁, 美 에너지 기업 직격탄=셰일 붐을 타고 원유를 과잉생산해 3차 오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미국 에너지 기업은 유가하락에 속수무책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OPEC의 생산 유지에 이어 아시아 및 미국에 파는 원유 수출단가를 인하하자 엑손모밀과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등 미국 석유 메이저의 주식과 채권 가치는 올들어 최악 수준으로 떨어졌다.

석유관련 정크본드(하이일드 채권) 시장은 더 심각하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전체 정크본드 시장에서 석유 가스 등 에너지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5.4%로, 최근 10년 새 4배가량으로 늘었지만 최악의 수익성을 보이고 있다.

씨티금융그룹은 “일부 하이일드에너지본드가 지난 수개월 보다 50포인트 낮게 거래되고 있다”며 “1조3000억달러 미국 하이일드 시장에서 최악의 자산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3차 오일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도 유가하락을 오래는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신한금융투자는 “사우디가 경상수지 적자를 보지 않는 유가 수준은 배럴당 65달러 정도”라면서 “유가가 65∼75달러 이하로 떨어질 경우 사우디도 힘들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우디는 원유 수출이 국가 경제의 78%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해 원유 수출액은 2900억달러다.

엔/달러 환율이 8일 도쿄외환시장에서 일시 121.65를 기록하고 있는 모습. [출처:니혼게이자이신문]

▶저유가의 역설=국제유가 하락이 계속되자 저유가가 세계경제에 약이라는 초반 전망이 흔들리고 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국제유가가 30% 하락하면 대다수 선진국 경제에서는 국내총생산(GDP)을 0.8%포인트, 미국에서는 0.6%포인트 정도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들 국가들이 원유 수입국이기 때문에 유가하락은 민간 소비 지출을 증가시키고 기업 에너지 비용을 절감시켜 세계경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유가는 ‘독이든 성배’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IMF와 미 연방준비제도(Fed),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최근 유가 하락으로 세계 경제 성장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고 낙관하고 있으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침체(GLOOM)의 징조일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HSBC의 스티븐 킹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수요 약세의 역할을 무시하긴 불가능하다”면서 “유가 하락은 더 넓게는 디플레이션 추세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럽과 일본, 중국의 디플레 공포에 빠져 있다.

BMO프라이빗뱅크의 수석 투자가 잭 애블린도 “지배적 원자재인 원유가 6개월새 40% 넘게 폭락했다는 것은 예상 밖의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부작용 중 하나가 신흥국의 강달러 쇼크다. 유가는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가가 하락하면 달러가치는 올라간다.

실제로 국제결제은행(BIS)은 달러강세 장기화에 따른 신흥국 차입 부담을 경고하고 나섰다.

클라우디오 보리오 BIS 통화경제국장은 “달러 강세가 지속하면 (특히 신흥국의) 차입 부담이 커진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신흥국 금융시장 여건은 더욱 빡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JP모간 신흥시장 통화지수가 79.32로 2000년이래 최저로 하락했다”면서 “유가하락과 달러강세가 신흥국 통화를 난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설상가상으로 일각에서는 신흥국에 2차 외환위기 암운이 감돈다는 지적도 나왔다. 마이클 카세이 WSJ 칼럼니스트는 “유가하락이 금융시장 불안을 되풀이하고 있다”면서 “최악 시나리오는 원유 매도가 궁극적으로 1997~1998년 아사아 외환위기와 닮은 충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강력한 통화팽창 정책을 암시하면서 “중국이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 전략 쓰면 파문은 쓰나미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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