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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홍성원> 엉거주춤했던 朴대통령의 336일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국민도, 박근혜 대통령도 모두 2일까지 이 해의 336일을 살았다. 그는 전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취임 이후 거의 2년 동안 제대로 발뻗고 쉰 적이 없는 날들이었다”고 토로했다. 삶의 강도에서 일반인과 차이가 난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이 구절 때문에 박 대통령의 올 한 해를 까칠하게 보기로 했다. 그와 동갑인 엄마 생각이 나서다. 엄마는 대형마트에서 10시간 동안 선 채로 ‘알바’를 한다. 쑤시는 삭신을 탓할 뿐 그만 못 둔다. 돈이 아쉬워서...

각설하고, 박 대통령의 336일은 엉거주춤했다. 1월부터 이날까지 그를 관통하는 흐름을 짚어본 결과다. 뭔가 큰 일을 하겠구나 싶으면 제동이 걸리곤 했다. 키워드로는 통일대박,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규제개혁, 세월호 참사, 인사참사, 창조경제, 국회 시정연설, 골든타임 등이 떠오른다. 

이슈 선점 면에서 시작은 창대했다. 통일대박론이 그랬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새마을운동의 21세기 확장판 같아서 추진력 넘쳐 보였다. 규제는 암덩어리ㆍ쳐부술 원수라고 천명했으니 박 대통령은 규제개혁의 ‘끝판왕’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변변치 않다. 북한의 황병서 등이 전격 방남해 남북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 같았지만, 삐라가 발목을 잡고 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G20 회원국들 중 1등 전략이라고 평가받았지만, 한국은 가가호호 빚에 허덕인다. 서민 삶은 팍팍해지는데 구조개혁의 단초를 찾긴 쉽지 않다. 단두대란 말까지 동원된 규제개혁도 난제다.   

‘세월호 참사’가 닥쳤기에 이들 어젠다가 공회전한 측면도 있다. 섭섭하겠지만, 이건 변명거리가 아니다. 박 대통령이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듯, 참사는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여온 적폐ㆍ부정부패 흔적들이 국민에게 피해를 준 것이다. 적폐는 국민도 힘빠지고 경제 활력도 잃게 하는 원흉이어서 앞으로 도려내면 되는 문제다. 다만, 이 정권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를 가진 공무원은 만나보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크게 발을 헛디딘 지점도 있다. ‘그림자 실세’ 정윤회 씨 논란이 이미지에 치명타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의 외부 유출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일벌백계를 주문했지만, 세간의 의구심은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문서 유출의 불법성만 강조하고 정작 정 씨와의 관계에 대해선 명쾌하게 밝히지 않아서다. 그의 입으로 “정윤회는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국정 개입 불가”라고 확인사살하지 못한 건 어정쩡함의 장기화를 예고한다. 갈길 바쁜 청와대로선 시쳇말로 된통 걸린 셈이고, 1000여일 이상 남은 박 대통령의 임기에 우여곡절의 한 챕터를 더할 여지가 크다.

이 칼럼이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어젠다 또는 정윤회 씨 논란과 관련해 박 대통령에겐 성과ㆍ의지가 엄연히 있는데 전무(全無)한 것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같이 몰아갔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나름 신속한 사과는 “그래도 박 대통령이야”라며 아들 걱정할 엄마 때문이지 일벌백계 대상이 될까 두려워서는 아니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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