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 이어 나치 독일 시대를 증언하는 또 한권의 책이 번역 소개 됐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밀턴 마이어가 1년간 독일에 거주하면서 나치에 가담했던 10명과 심층 인터뷰를 완성한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다. 나치와 히틀러의 잔혹상이 여전히 생생했던 1955년에 출간돼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책으로 우리말로는 약 60년만에 번역됐다.
저자의 인터뷰에 응한 나치 협력자들은 ‘평범한’ 독일인들이다. 재단사와 실업자, 목수, 고교생, 빵집 주인, 수금원, 은행원출신, 교사, 경찰관 등이다.
이들 전 나치 당원들은 각각의 이유로 나치에 가담한다. 누군가는 나치야말로 독일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고, 누군가는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는 자신이 나치가 됨으로써 곤경에 빠진 이를 도울 수 있다고, 누군가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신이 나치를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하지만 실제로는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내린 비겁한 선택에 불과했으며, 서로 눈치만 보다가 결국 역사상 최악의 정권 밑에서 최악의 범죄를 묵인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 마이어는 특유의 분석과 통찰로 나치즘이 단순히 무기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하는 악마적인 소수의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다수 대중의 동조와 협력의 산물이었음을 밝혀낸다.
심지어 이들은 히틀러 시절을 자기 인생의 황금기로 생각한다. 나치 시대에 누렸던 단기간의 풍족한 삶이나 복지 혜택을 그리워하면서, 비록 히틀러가 잘못을 했지만 잘한 부분도 있다고 두둔하기까지 한다. 저자가 빵집 주인 베데킨트에게 왜 나치를 신봉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나치가 “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렇게 했구요”라고 답한다. 실제로 마이어가 인터뷰한 10명 중 9명은 직장이 있었다. 아이들은 여름에 캠프에 가고, ‘히틀러 소년단’ 때문에 거리를 쏘다니지 않았기에 부모들은 걱정을 덜었고 집안일은 잘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무도 추위에 떨지 않았고, 아무도 굶주리지 않았으며, 아무도 아픈 상태로 방치되지 않았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나치라는 새로운 질서의 축복이 모두에게 도달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언론의 조작을 통해 모든 것이 그러하다고 믿었지만 사실 나치의 폭정은 철저히 은폐되어 있었고, 자신들이 평온하다고 생각하는 공동체의 외부로 나가지도 시선을 돌리지도 귀 기울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독일인의 태도가 비극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독일 인구 7천만 명 가운데 소수인 100만 명이 저지른 폭력의 배후에는 다수인 6900만명의 동의와 참여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저자 밀턴 마이어는 미국의 언론인 겸 교육가이며, ‘프로그레시브’ ‘시카고 이브닝 포스트’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등의기자와 칼럼니스트로 일했으며 시카고 대학, 매사추세츠 대학, 루이스빌 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미국 시카고에서 개혁파 유대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0년에 퀘이커교도가 되었는데, 1960년대에는 국무부의 규정에 따라 ‘충성 맹세’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여권 발급이 취소돼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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