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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한명의‘부림사건’…32년만에 무죄
“‘E.H.카’서적 읽었다”…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억울한 옥살이 50대 무죄확정
법원 “인권 보루역할 못해 사과”


서슬 시퍼렇던 신군부시절,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영장도 없이 체포,감금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50대 남성이 32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지난 9월 대법원에서 5공화국 시절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공안 사건으로 불리는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33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데 이어 이번 사법부의 판결로 또 다시 당시 정권의 용공조작의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5공화국 출범 직후인 1981년 경희대 재학생이던 김모(53) 씨의 사연은 부림사건 피해자들과 매우 비슷하다.

‘부림사건’은 1981년 공안 당국이 부산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수십일 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조작한 용공 사건이었다.

김 씨는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러시아 혁명사’, 모리스 도브의 ‘자본주의의 어제와 오늘’, 에리히 프롬의 ‘사회주의 휴머니즘’ 등의 ‘혁명서적’들을 구입해 읽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치안본부 수사관들은 당시 김 씨 등 경희대 학생 수십명을 ‘반국가단체’인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과 함께 북한을 찬양, 고무, 선전하고 이를 위한 표현물을 취득해 의식화 학습을 했다는 등의 혐의를 씌워 영장도 없이 불법 연행해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고가 모진 고문을 가했다.

그러나 김 씨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압수된 서적과 자백에 불과했다.

재판 과정에서 진술도 번복됐지만 이듬해 9월 대법원은 징역 2년 6월을 확정했다.

32년이 지나서야 김 씨는 억울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변민선 판사는 25일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982년 당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던 김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변 판사는 “김 씨의 자술서와 신문조서는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에 의해 작성됐고, 당시 재판 과정에서도 내용이 부인돼 증거능력이 없다”며 “사상의 자유는 현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넓게 인정해야 하는 것이어서 이 사건 압수물이 이적표현물이라는 취지의 당시 감정서만으로는 피고인이 반국가단체 등을 찬양, 고무 또는 동조할 목적으로 이 사건 압수물을 보관 또는 소지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사법부가 불법 감금과 가혹행위를 애써 눈감고,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큰 고통을 당한 김씨에게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며 “재심 판결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배두헌 기자/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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