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경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상임대표는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1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을 했음에도 피해 여성과 자녀들이 재판부의 명령 때문에 별다른 보호책 없이 가해자를 만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상임대표는 가장 단적인 예로 자녀면접교섭권과 부부상담 명령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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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부부상담, 면접교섭 과정에서 자칫 피해자가 머무는 쉼터나 자녀가 비밀리 전학한 학교 등이 가해자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랜 기간 폭력을 겪은 피해 여성ㆍ자녀들이 가해자와 만나는 것 자체가 ‘2차적 정신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법 제843조 등에 근거해 피해자가 재판부의 부부상담이나 면접교섭권 명령에 거부의사를 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재판상 불이익을 당할 것을 염려해 거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 상임대표는 “가정폭력 관련 사건처리에서 가장 우선시 돼야 할 것은 피해자와 자녀의 안전”이라며 “가정폭력을 이유로 이혼을 신청한 피해자에 대한 부부상담을 제한하는 등 법적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불가피하게 피해자가 법원이나 수사기관에 출석해야 할 시에는 훈련된 가정폭력전담경찰이 동행해 가정폭력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 상임대표는 주민등록 열람 제한 확대도 주장했다.
지난 2009년 주민등록법 개정으로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주민등록표 열람이나 등ㆍ초본의 교부를 제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가정폭력 피해자임을 입증하는 서류가 제한적이라 실제 피해자임에도 신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 많다. 또 주민등록 열람 제한을 신청하더라도 친권자인 가해자가 피해자의 동반자녀를 임의로 본인의 주소로 전입 신고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를 통해 전 주소지인 피해자의 거주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고 상임대표는 “현행 주민등록 열람제한 제도의 대상자 및 신청자를 확대해야만 이같은 불상사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개인정보 비밀 유지”라고 강조했다. 고 상임대표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버지와 남편이 ‘보호자’기 때문에 가정폭력의 ‘가해자’라도 법률상 비밀엄수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게 현실”이라며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관련자들이 피해자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비밀엄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여성가족부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부부폭력 발생률은 2004년 44.6%, 2007년 40.3%, 2010년 53.8%, 2013년 45.5% 등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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