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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리포트> 30~40대, “새로운 삶 찾아 농촌으로 간다”
[헤럴드경제 =원호연 기자]한동안 농촌으로 가서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노년의 퇴직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농사를 짓겠다는 ‘귀농인’보단 안락한 전원 생활을 즐기려는 ‘귀촌인’에 가까웠다. 그러나 새롭게 귀농 행렬에 참여하는 40대 이하의 젊은층은 ‘소신’과 ‘철학’으로 무장하고 농촌을 향하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4년 째 농사를 짓는 박무열(44)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과감히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어머니를 홀로 둘 수 없다는 ‘효심’도 컸지만 평소 “왜 유기농 농산물은 부유층만 사먹을 수 있는 비싼 가격이어야 하나”는 의문을 스스로 풀어보고자 하는 시도였다. 아내도 박씨의 생각에 선뜻 동의하고 고된 농촌 생활에 동참했다. 그는 서울 지인들의 소개로 친환경 쌀과 블루베리, 유정란 등을 택배로 팔고 있다.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애자 보다 싼값에 농산물을 공급한다는 입소문을 타고 매출이 차츰 늘어가고 있다.

경기도 김포의 한농민이 트랙터를 이용해누렇게 익은 벼의가을 걷이를 하고있다.

박씨 주변에도 소신을 가지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택해 농촌에 내려온 젊은 귀농인들이 많다. 서울에서 시민단체 일을 하다가 바른 먹거리 운동을 새로운 시민운동의 방법으로 택한 사람도 있고 “열심히 놀고 틈틈이 공부하자”는 모토로 교육혁신을 이끌고 있는 거창군의 독특한 교육시스템을 보고 자녀를 데리고 이곳으로 내려온 가족들도 있다.

농업인재개발원의 2011년 설문조사는 젊은층일수록 여가보다는 ‘가치있는 삶’을 귀농ㆍ귀촌을 결정하는 이유로 삼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농촌을 향했다는 응답이 30대와 40대는 각각 18.3%와 15.2%로 11.8%의 50대 이상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여가와 소비에 중점을 둔 농촌생활을 지양하고 지역민의 일원으로 농업생산에 매진하려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살며시 가을 다가오는 듯 하다. 27일 오후 경기도 강화의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주목할 점은 30~40대에서는 ‘가족의 건강’이나 ‘보다 나은 교육’, ‘바른 먹거리 생산‘과 같은 새로운 가치에 뿌리내리고 살기 위해 농촌 행을 택했다는 응답이 50대 이상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젊은 층의 경우 단순히 경제적 이유로 농사일을 택하거나 힘든 도시생활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농촌에 내려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극심한 취업난에 경쟁이 치열한 삭막한 도시, 열심히 일하지만 자아성취의 보람보다는 허탈감을 안겨주는 도시를 떠나 소박하고 때로는 가난하지만 가족과의 사랑과 건강한 삶, 가치있는 삶을 찾을 수 있는 대안으로 농촌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 불고 있는 힐링과 단순한 삶, 행복한 삶에 대한 추구도 이의 배경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들의 귀농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박씨는 농촌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고되다고 지적한다. 그는 “산골 깊숙히 들어와 생활하려면 난로를 고치는 사소한 일도 혼자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기반이 약한 청년층에게 평균 2억원 정도의 초기 투자비용도 부담이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최소 3년은 지나야 소출이 나오기 때문에 장기투자가 불가피하다. 청년층은 집도 땅도 없이 무(無)에서 시작해야 하는 만큼 노년 은퇴자보다 불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귀농ㆍ귀촌 지원은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긴 하지만 여기에 의존하지 말라는 조언도 나온다. 젊은 인구를 유치하기 위해 지자체가 노력하고 있지만 열악한 지방재정 때문에 다자녀 지원 등 재정적 지원은 오히려 수도권보다 적다.

성공적으로 농촌 생활에 정착하려면 ‘이방인’이 아닌 ‘새로운 이웃’으로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가는 ‘친화력’이 필요하다고 박씨는 조언한다. 농민들이 쌓아올린 수십 년 노하우를 전수받으려면 ‘이익’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얘기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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