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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협, 로펌 고용 ‘갑(甲)질’ 제동…왜?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변협이 ‘고용관련분쟁위원회’를 신설하고 연차휴가, 퇴직금 보장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표준근로계약서’를 만들어 권고하기로 한 것은 법을 다루면서도 정작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변호사들을 구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특히 올 2월 항소심 선고가 난 여성 변호사 A씨 사건이 하나의 큰 계기가 됐다. 지난 2012년 6월 결혼과 임신을 이유로 무급휴가 9개월, 유급휴가 3개월 등 1년 간 휴직 조치를 통보 여성 변호사 A씨는 근로자 배치에서 남녀를 차별했다는 이유로 같은해 말 해당 로펌 대표 임모 씨를 기소했다. 1심은 A씨가 스스로 휴직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항소심은 ‘휴직을 권고한 것일 뿐’이라는 임 대표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법조계의 불평등한 고용 현실을 공개으로 세상에 알린 사건으로,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알고 부당하다고 여긴 문제였지만, 이를 법적분쟁으로 표출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변협이 지난 2012년과 올해 ‘일ㆍ가정 양립문제’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제2의 A씨 사건’은 지금도 잠재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문결과, 심한 경우 주당 80시간 넘게 일하고 연차휴가도 없고 법정 휴정기라는 특정시기에만 휴가를 쓸 수 있고 퇴직금 처리가 안되고 육아휴직이 어렵다는 등 젊은 변호사들의 불만이 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문제는 근본적으로 근로계약서 없이 로펌에 고용되는 변호사 업계의 관행에서 비롯된다.

변협 관계자는 “후배 변호사들의 불만은 날로 높아지는데 고용문제로 분쟁이 생길 경우 이를 내부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중재기구 하나 없다”며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은 지키라는 취지로 표준근로계약서 안을 만들고 고용분쟁조정위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최종안이 통과되더라도 갈 길은 아직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변호사는 “이번 변협의 최종안이 통과된다면, 진일보한 결정이 되겠지만 얼마나 잘 지켜질지는 미지수”라며 “아직도 퇴직금 문제 등을 제기하면 업계에서 매장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큰 것이 현실인데 시스템이 갖춰진다고 해도 얼마나 개선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 2012년 ‘로펌에 고용된 변호사도 근로자로 인정하라’며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처음 판결했다. 하지만 표준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변호사 업계의 관행때문에 퇴직금을 지급하는 경우는 일부 대형 로펌을 제외하면 많지 않다. 한마디로 ‘법 따로 현실 따로’인 셈이다. 또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 2011년 표준근로계약서를 마련해 권고했지만, 말 그대로 ‘권고안’이어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변회의 표준계약서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유급 연차휴가 부여, 퇴직금 지급, 주당 40시간 근무와 시간외 근로 가능 등 변협이 이번에 마련한 표준근로계약서보다 간단한 내용임에도 로펌 대표들이 이를 꺼리고 있다.

변호사 일각에서는 기대반 우려반의 시선도 있다.

지금이라도 불합리한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변호사 2만명 시대’를 맞아 변호사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데, 까다로운 근로조건까지 제시된다면 청년 변호사 실업문제나 여성 변호사의 일ㆍ가정 양립문제가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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