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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서울로 소환된 구보씨…도시 산책자들 북촌ㆍ충정로를 걷다
-도시에 대한 사색담은 회화, 설치 등 다양한 전시 눈길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구보는 갑자기 걸음을 걷기로 한다. 그렇게 우두커니 다리 곁에가 서 있는 것의 무의미함을 새삼스러이 깨달은 까닭이다. 그는 종로 네거리를 바라보고 걷는다.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 아무런 사무도 갖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나 내어 놓았던 바른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 <박태원 1938년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중>

소설가 구보씨가 21세기 서울로 소환된다면? 전차가 사라진 거리, 차장이 없는 버스를 타고 쇼윈도 불빛 화려한 종로 사거리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박상희, 삼청동길 밤, 130x30㎝, 캔버스ㆍ플라스틱 시트위 아크릴, 2014 [사진제공=갤러리토스트]

작가 예기(Ieggi Kimㆍ본명 김예경ㆍ49)의 ‘걷는 도시_충정로 모던’은 대도시를 걷고 사색하는 산책자의 궤적을 따라 간 작업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서울 산책을 이어간다는 의미의 장기 프로젝트. 충정로에서부터 시작된 산책의 주요 포인트에 예술혼을 가미한 결과물들은 지난 14일부터 아트선재센터(종로구 율곡로)에서 선보이고 있다.

21세기 도시, 서울을 돌아보는 미술 전시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서울문화재단(대표 조선희)이 운영하는 금천예술공장은 금천구 독산동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대한 연구ㆍ전시 프로젝트를 지난 2010년부터 국내ㆍ외 작가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올해 5회째를 맞은 기획 전시는 ‘결을 거슬러 도시 손질하기’라는 타이틀로 오는 20일부터 금천예술공장(금천구 독산동)에서 선보인다. 작가 박상희(45)는 아예 ‘도시여행’을 타이틀로 한 회화 전시를 열었다. 

박상희, 북촌골목, 130x30㎝, 캔버스ㆍ플라스틱 시트위 아크릴, 2014 [사진제공=갤러리토스트]

▶근ㆍ현대가 공존하는 곳, 충정로=도시개발 계획 하에 판자촌 벨트를 걷어내고 들어선 충정로 금화시민아파트를 하늘 높이 치솟은 건물들과 ‘꼴라주’풍 예기의 사진 작업에는 도시 변화를 바라보는 작가의 냉소적인 시선이 담겼다.

작가는 “1970년대 아파트 문화의 상징인 금화시민아파트는 전통과 근대가 공존하는 묘한 아름다움이 있다”면서 “도시 변화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도시를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도시의 산책자로서 샤를 보들레르, 발터 벤야민은 언급하면서 왜 박태원은 얘기하지 않는가 의아했다. 1930년대 당시에 서울 산책이라는 테마는 아주 진보적인 것이었다”면서 소설가 박태원에 대한 오마주라는 이 프로젝트의 의의를 설명했다. 

예기, 충정로 금화시민아파트, 90x90㎝, Digital C-print, 2014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그의 작품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서울의 겉모습이 아닌, 변화하는 가운데서도 옛 것의 온기를 품고 있는 서울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함께 담겨 있다. 전시 기획자 김예경은 작가 예기의 본명. 그가 아트선재 1층 프로젝트 스페이스를 플랫폼으로 펼친 사진, 영상, 설치작품 40점은 이달 30일까지 만나 볼 수 있다.

▶쪽방 도배지에 새겨진 가리봉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금천예술공장의 ‘결을 거슬러 도시 손질하기’전은 벤야민의 동명의 언명(Brushing the City against the Grain)에서 모티브를 얻은 전시다. 한국, 네델란드, 콜롬비아, 대만 등 4개국의 6개 작가팀이 참여했다.

금천구에 사는 9명의 주부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금천미세스’는 밤마다 금천구 이웃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관련 장소를 찾는 투어를 진행, 사람들의 기억으로 재구성한 금천구 지역의 역사를 사운드 아트와 설치로 재현했다. 

예기, 충정로 금화시민아파트, 90x90㎝, Digital C-print, 2014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또 실제 수개월간 쪽방에서 거주하면서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네다섯 겹으로 뒤덮인 쪽방의 도배지를 벗겨내는 작업을 비디오 영상으로 기록한 연기백(40) 작가의 작품에서는 옛 여공들이 남긴 삶의 흔적과 역사를 짚어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한국인의 조급한 기질을 그린 콜롬비아 작가 후안 두케(40)의 설치 작품과 진로, 카스 등의 상표 마크를 조합해 서울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 낸 대만 작가 류치헝(29)의 드로잉에서는 이방인이 본 서울의 ‘민낯’이 드러나 있다. 전시는 12월 10일까지. 

 
▶빛의 휘장 뒤에 가려진 북촌, 그 정겨움과 낯섦의 공간=박상희 작가는 캔버스에 붙인 플라스틱 시트지 위에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작가다. 1998년 간판이 있는 도시 풍경을 담아 ‘우리 시대의 얼굴’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선보인 이래 지금까지 도시 풍경에 숨겨진 기호들을 찾는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작가는 “도시는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사회적 욕구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특히 간판은 도시 욕망의 집약체라는 것. 예컨대 한국 도시들의 간판을 보면 강렬하고 경쟁적인데, 이는 치열한 경쟁사회 한국을 도시 간판이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도시라는 일상 공간을 캔버스에 기록했다. 붉은 톤의 강렬한 색채가 화려한 불빛을 품고 있는 그의 화폭은 정겨우면서도 낯선 북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북촌은 어떤 도시 공간일까.

“삼청동과 북촌은 대표적인 관광지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게는 일상적인 거주 공간이다. 지역민들 입장에서는 관광객들이 시끄럽고 귀찮은 존재일 것이다. 내가 사는 이 곳을 뒤돌아보기만 해도 여행지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전시는 12월 3일까지 갤러리토스트(서초구 방배동)에서 열린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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