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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록강에서 북경까지…조선 사신길에서 사람과 역사 이야기
연행사의 길을 가다/서인범 지음/한길사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연행사’(燕行使)란 고려와 조선을 통틀어 약 700년 동안 중국의 원ㆍ명ㆍ청 나라의 수도인 베이징에 정기적으로 파견됐던 사신을 말한다.

조선 전기에는 명에 파견한 사신을 ‘조천사’(朝天使)라고 불렀지만, 청나라가 들어선 조선 후기부터는 청나라의 수도인 연경(燕京), 즉 현재의 북경(베이징, 이하 중국 지명은 책의 표기대로 우리식 한자독음에 따름)에 가는 사신이라는 의미로 연행사라 불렀고, 동국대학교 서인범 교수는 새로 출간한 저서 ‘연행사의 길을 가다’(한길사)에서 조선의 대중국 사신을 통칭해 연행사라 했다. 연행은 중국 황제의 생일과 황태자의 탄생, 새해맞이를 축하하기 위한 조선의 국가적 행사였으며, 명ㆍ청대에 매해 평균 3회 전후 정규 파견이 이루어졌고, 사행단은 대개 300~600명정도의 대규모로 구성됐다. 이를 통해 조공이 이뤄졌고, 한중간의 주요 문제가 논의되고 해결됐으니 연행사의 사행길은 대중외교의 맥이자 현장이었다. 조선의 연행사들은 그 여정과 견문을 기록으로 남겨 이를 ‘연행록’이라 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약 600종에 이르며 청나라 때의 것이 많다. 


‘연행사의 길을 가다’의 저자 서인범 교수는 연행사들이 왕명을 받고 걸었던 사행길을 따랐다. 압록강에서 요양을 지나 광녕(현재의 랴오닝성 진저우 베이전)을 거쳐 산해관을 통과해 북경에 도착하는 노선이다. 청나라 초기엔 수도가 심양이라 그곳을 도착지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서 교수는 심양과,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유명한 열하도 아울러 다녀왔다. 서 교수는 22박 23일의 일정으로 도보, 낡은 버스, 배, 택시, 기차 등을 이용해 총길이 2000㎞의 사행길을 답사했다. 


그 결과인 ’연행사의 길을 가다’는 여행기이자 역사에세이다. 지난 2004년 최부의 ‘표해록’을 번역 출간하고, 이에 기반해 ‘명대의 운하길을 걷다’라는 역사 답사기를 낸 바 있는 서 교수는 이후 10여년간 ‘연행록’의 번역과 연구에 매달렸다. 서 교수는 이번 책에서 연행사들이 본 당대 중국의 모습과 명ㆍ청대의 주요 역사, 주요 유적에 얽힌 전설과 야사, 그리고 사행길의 다양한 일화들을 불러낸다. 여기에 서 교수가 답사길에서 만나고 확인한 지금 중국의 풍경과 한ㆍ중관계의 현실을 더했다. 중화로 상징되는 조선의 외교는 흔히 사대주의로 일컬어지지만 그 속에서 목숨을 걸고 왕명을 좇은 외교사절들을 통해 자주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저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인 뿐 아니라 조선족과 북한군이 가끔 얼굴을 내미는 여정이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이 살아왔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서 교수의 사행길 답사는 연행사 일행의 출발부터 북경 도착, 그리고 귀국길까지 좇는 여정으로 총 4부에 걸쳐 구성됐다. 제1부에선 압록강에서 조선 사신의 숙소인 회원관이 있던 요양까지의 길을 다룬다. 연행사 일행은 의주에서 기녀가 함께 하는 환송으로 시작됐다. 남남북녀라고 했던가. 의주 기녀들은 빼어난 재색으로 이름이 높았으니 “꽃이 부러워하고 달이 숨을 정도의 미인과 구름도 멈추게 하고 애간장을 녹이는 명창”이라고 전해질 정도였다. 다만 그 정도인 것이 아니라, 지방 관리들이 마련한 연행사의 전별회에선 곱게 차려 입은 기녀들은 군관들과 더불어 지금으로 치면 ‘마장마술’ 시연도 했다. 즉 기녀들이 말 위에서 칼을 다루며 재주를 부렸으니 그보다 더한 장관이 없을 정도였다. 


연행사는 국경 지역 문제에 대한 해결사이기도 했다. 중종 때는 위화도 등 압록강의 섬들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을 요동지방으로 돌려보내달라는 청을 명나라에 전하는 왕명의 전달자가 바로 연행사였다. 압록강의 섬 중에선 조선에서 도망친 백성들이 정착하면서 중국쪽의 여인들과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연산군 때는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문서를 연행사에 품에 안겨 명나라 황제에게 보냈다. 압록강 유역에 도착한 서 교수는 선착장의 매점 주인으로부터 물건을 사면 국경 초소를 지키는 북한 병사와 이야기를 하도록 해주겠다는 말도 듣는다. 


인정인지 뇌물인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이 조선의 연행사들은 길목마다 중국의 관리와 군사들에게 다양한 물품을 바쳐야 수월하게 여정을 밟을 수 있었다. 연행사들이 중국땅으로 넘어가면서는 현지의 군마로부터 호위를 받아야 했는데, 그를 위해 조선의 조정은 잔치를 베풀어 주고 1년치의 양곡을 대주는 등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의주에서 출발한 연행사들은 회석령, 청석령 등의 고개를 넘어 북경쪽의 길과 심양으로 갈라지는 요양에 들어서게 된다. 청석령은 바로 병자호란 직후 청에 볼모로 끌려갔던 조선의 왕자 봉림대군(후일 효종)이 ‘청석령 지났느냐 초하구는 어디메오’라며 처연한 시를 읊었던 고개다.

제2부 ‘명산을 두루 거쳐 영원성에 도착하다’에서 저자 서인범 교수는 청대 사행길의 대표적인 방문지였던 심양을 들러 청조의 발상지라 할 심양고궁과 역시 볼모로 잡힌 조선의 왕자 소현세자가 머물렀던 세자관을 답사한다. 세자관소는 “좁고 낮아 습하며 더러운 냄새가 나고 무더워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고 한다”며 저자는 당대 청ㆍ조간 힘의 우열을 단적으로 전해준다. 봉우리가 999개라 천산으로 불린다는 중국 최고의 명산을 거쳐 영원성에 도착한 저자는 청태조 누르하치가 격전을 벌이다 패배하고 피를 토했다는 구혈대의 전설을 불러낸다. 이 격전 역시 연행사였던 김경선이 목격했는데, 그 기록이 ‘구혈대기’로 남았다. 당시 사신들은 영원성의 또다른 전설도 현지인들로부터 듣고 기록에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이 상중에 아버지의 묘를 지킨 남편과 그 남편으로 위장해 여인을 범한 협객, 사실을 알고 자결한 여인의 이야기다. 


제 3부 ‘야만과 문명의 경계, 산해관을 넘다’는 압록강에서 북경에 이르는 사행길 중 중간 지점이자, 중국에선 ‘중화’라는 문명과 ‘오랑캐의 땅’을 가르는 산해관에 여행기다. 이 곳에 있는 만리장성의 한 자락(각산장성)에서 저자는 망부석촌과 맹강녀에 얽힌 설화를 전한다. 맹강녀 설화는 다양한 판본의 내용이 있지만, 하나같이 장성 축조에 동원돼 노역하던 남자가 죽고, 그를 찾아 헤매던 미모의 부인이 뭇 남성으로부터 유혹을 받았으나 부음을 듣고 몸을 던진다는 내용이다. 맹강녀를 탐한 이 중에는 장성 축조의 주인공인 진시황도 있었다. 장성 밑에 묻힌 수많은 백성들의 죽음과 애환, 눈물을 기리는 이야기인 것이다.

마지막 4부 ‘왕명을 완수하고 귀국길에 오르다’편에선 북경 자금성에 도착한 조선 사신이 황제를 알현하는 장면과 외교적 활약상, 공무역 행태를 자세하게 담았다. 끝엔 연행사의 여정이 한중 외교의 생명줄이자, 조선 사신들의 목숨을 건 도전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많은 연행사들이 사행길에서 풍토병, 호랑이, 험로, 도적 등을 만나 객사한 내력들을 전한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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