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들고 쓰고 신고 입는 것들이 간직한 시간, 그리고 기억
-더 클로짓 노블-7인의 옷장/ 김중혁 외/ 문학과 지성사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그녀는 더듬더듬 흩어진 여자의 낡은 구두를 가지런하게 모았다. 앞부리의 굵은 주름이 만져졌다. 한번도 닦아 신지 않은 듯 보이는 구두, 먼지와 때가 굳어 가죽의 일부가 되어버린 구두를 그녀가 가슴에 움켜쥐었다. 그녀는 여자의 낡고 굽 낮은 구두를 신고 절뚝이며 골목길을 내려갔다. 굽이 나간 하이힐이 가방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덜그럭거렸다” <백가흠 ‘네 친구’ 중>

먼지와 때가 굳어 가죽의 일부가 돼 버린 구두의 주인(김 집사)과 혜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독자는 끝까지 알지 못한다. 다만 “지나간 시간과 알 수 없는 시간,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일들이 해독 불가의 수수께끼처럼 구두, 가방, 옷, 안경 등의 패션 오브제 속에 꼭꼭 숨겨져 있을 뿐이다.

세계적인 팝스타 마돈나에게 ‘마놀로 블라닉’ 구두는 “섹스보다 좋은 것”이었고,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하이힐(1991)’에서 하이힐은 욕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부러지기 쉬운 인간의 연약함을 대변하는 상징이었다.

김중혁(종이 위의 욕조), 정이현(상자의 미래), 정용준 (미드윈터), 은희경(대용품), 편혜영(앨리스 옆집에 살았다), 백가흠(네 친구), 손보미(언포게터블) 7명의 소설가들은 패션 오브제들이 가진 일상성에 주목했다.

‘더 클로짓 노블’은 어쩌면 소설 속 옷장 이야기라기보다 옷장 속에서 꺼낸 소설에 더 가깝다. 어느날 문득 발견한 옷장 속 물건처럼, 누군가(그/그녀), 혹은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는 패션 오브제들이 놓쳐버린 시간에 대한 상실과 결핍을 상기시키는 일종의 기억 재생 장치 역할을 한다.

술자리에 두고 나온 가죽 가방, 사랑의 아린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레이밴 보잉 선글라스, 배수구 구멍에 박혀 부러져버린 명품 하이힐 등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더듬는 행위는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또 하나의 의식이다.

amig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