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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함영훈> 수능 보는 날 떠올린 李白<이백>과 睡菴<수암>주인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당나라 시인 이태백은 취중 객기로 익사했다. 그는 술에 취해 중국 안후이성 채석강에 비친 월광을 보고 달을 품겠다면서 물에 뛰어들어 숨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850년쯤 후 명나라 시인 매지환이 ‘채석강가 한 무더기 흙무덤/ 오가며 써 놓은 시(詩)들이여/ 노반(최고의 목수)네 문 앞에서 도끼질을 자랑함이로다’라는 추모의 글을 남겼다. 이태백은 세기의 시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객기로 인한 익사’라는 팩트를 믿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고래 타고 신선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니 사람들은 이를 믿으려 했고, 이 얘기는 구전되어 진실로 여기고 싶은 스토리가 됐다.

성호 이익의 제자인 안정복은 실학자 다운 시를 썼다. ‘물에 비친 달그림자 정체가 없건만/ 빈 그림자에 속기도 쉬운 일이네/ 청천 하늘에 뜬 흰 수레바퀴가/ 밝게 빛나는 본체인 것을.’ 안정복은 허상의 실체적 진실을 읊었다. 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도, 고래 탄 신선 얘기도 모두 허상임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허상과 현실의 중간지대로 가보자. 구한말 학자 기우만은 외세 침탈과 국정 혼란의 현실을 개탄해하며 의병을 일으켰다가 고종의 당부로 해산했던 ‘의혈’ 인사였다. 낙담한 그는 친구인 선비 김민호가 택호를 ‘수암(睡菴:자는 절간)’이라고 붙인 뜻에 동조하면서 ‘잠 자는 인생’을 택한다. 즉 ‘보고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지 않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기로 결심한다. 기우만-김민호는 속을 것인가, 아플 것인가의 기로에서 현실 도피를 선택한 것이다.

팩트가 근본과 골격을 형성하면서 예쁜 허상과 하얀 거짓말이 냉혹한 현실을 잘 감싸주면 좋으련만, 예나 지금이나 허상이 상식과 팩트를 제압하려 하고, 꿈으로도 여길만한 착한 허상 마저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냉정하게 재단(裁斷)되는 경우가 많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란다.’ 백 번을 얘기해도 통계를 아는 아이들은 들은 체 만 체 한다. 13일 시험을 치르는 수능생들은 반칙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좋은 어른이 된다는 교과서도, 성적표 외에 좋은 품성과 다양한 경험이 사회 진출할때 좋게 평가된다는 선생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그들은 수능 1~2문제만 더 틀려도 객관적 능력은 무시된 채, 과도한 차별을 받는다는 현실의 ‘대세’를 잘 안다. 고쳐야할 세태지만 쉽지 않다.

수능이 끝나면 제 나름 ‘실패했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힘들어 할 게 뻔하다. 교과서와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체념하라 해야 할지, 아프더라도 개선해 보려고 발버둥치라 할지, 차라리 보지도 듣지도 말고 혼자서 멋대로 가라 할지 고민스럽다. 결국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이것 뿐. 예나 지금이나, 고단한 현실도, 호수에 비친 달그림자 처럼 아름다운 허상도 있다고,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나아졌다고, 그것을 안 것 만으로도 우리는 과거보다는 좋은 현재를 가꿀 수 있는 거라고.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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