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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정용덕> 韓ㆍ中의 체제 차이와 정책의 유사성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ㆍ행정학


한ㆍ중 수교가 체결된 지 어언 22년이 되었다. 그 동안 두 나라 사이에 적지 않은 문물교류가 이뤄졌다. 필자를 비롯한 행정학자들도 중국의 관련 대학이나 학술단체들과 교류하면서, 그 나라의 행정학과 행정제도의 발전에 관해 지속적으로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두 나라가 수교를 맺은 이후 처음 10여년은 주로 우리 측에서 중국의 학자들과 실무자들에게 근대적인 행정학의 이론과 실무행정의 제도 및 기법들을 소개하고,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자문(諮問)에 응하는 입장이었다. 한ㆍ중 수교가 이뤄진 것은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지 14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 나라의 행정에 대한 학문과 실무 수준은 매우 낙후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약 10년 동안에 중국학자들의 학문성과 실무자들의 전문성은 급속하게 향상되었다. 그동안 구미 여러 나라에 유학생을 대거 파견하고, 학자들 간의 직접적인 교류도 크게 늘렸으며, 외국의 중요한 저서들의 대부분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등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는 각 대학의 행정학 석사학위(MPA) 과정이 국제표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국가가 직접 심사해서 인증해주는 노력까지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축학, 경영학, 의학 등을 제외하고는 아직 이런 시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최근 들어 중국학자들이 국제학술대회에서 공개적으로 자국의 행정관리와 제도 그리고 정책의 문제점을 학술적으로 비판하는 사실이다. 경험적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수준으로 행정학 발전이 이루어진 점이다.

이번 가을에 열린 두 차례의 한ㆍ중 세미나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중국학자들은 자국의 극심한 환경오염, 노인과 아동에 대한 부실한 복지서비스, 도시화로 인해 침식되는 농민들의 피해, 재난안전관리 미비 등을 실증적인 자료를 토대로 신랄하게 지적했다.

이 가운데 흥미로웠던 발표는 이처럼 정책이 부실하게 된 중요한 원인을 지방의 수장들을 중앙에서 하향식으로 임명하는 방식에서 찾은 내용이었다. 각급 지방의 수장들을 중앙정부가 실적에 따라 임명하고 있는데, 그 실적의 기준이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느냐보다는 국민경제성장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여부를 따진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기준에 부합하는 실적을 쌓기 위해 지방 수장들은 민생과는 동떨어진 지역개발 정책을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분석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할 때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995년에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이후 한국에서 각급 지방의 수장들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선출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년 동안에 지방의 수장들은 대체로 자연환경이나 재난안전 등 주민들의 삶의 질 보다는 지역의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전념해 왔다. 지방 수장들을 임명(즉, 선출)하는 지역 주민들이 선호하는 정책의 우선순위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화장장이나 원전관련 시설 등 이른바 ‘혐오시설’의 경우에는 총력을 다해 반대하는 주민들이지만, 막상 자신들의 삶의 질보다는 지역개발을 우선하는 지방 수장들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거시적 수준에서의 정치경제체제는 두 나라가 극히 다르다. 하지만 이처럼 실질 정책의 내용 면에서는 양국이 매우 닮아있다는사실은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민민주주의 중국이든 자유민주주의 한국이든, 그리고 중앙이든 지방이든, 정책의 제1차적 우선순위는 경제성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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