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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년 동안의 고독’ 작가 마르케스의 동포들…환상적 발레 ‘심청’에 홀리다
[헤럴드경제(보고타)=신수정 기자] “너무 아름다워요”

지난 25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위치한 훌리오 마리오 산토도밍고 마요르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심청’을 보고 나온 관객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날 공연이 끝나자마자 맨앞줄 관객부터 차례로 파도를 타듯 전부 일어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관객들은 커튼콜이 끝나고 무대 조명이 꺼진 후에도 박수와 함께 환호를 이어갔다.

▶콜롬비아 관객들, 한국 발레에 매료돼=유니버설발레단이 지난 24~26일 3일동안 공연한 ‘심청’은 전석(1300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25일 공연은 콜롬비아 공영방송 카날 캐피탈이 전국에 생중계를 할 정도로 현지인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지난 1986년 ‘심청’을 초연한 이후 전세계 12개국에서 200여회 선보였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남미에서 공연했다. 콜롬비아는 고지대인데다 극심한 빈부격차 및 게릴라들의 무장투쟁 등으로 치안이 불안해 여건이 좋진 않았다.


해발 2640m에 위치한 보고타는 백두산 정상(2750m)과 비슷한 높이로, 산소가 부족해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찬다. 무대에 선 무용수들은 평지에서보다 훨씬 숨을 가쁘게 내쉬었고, 일부 무용수들의 숨소리는 객석까지 들려왔다. 심봉사역을 맡은 무용수는 무대에 오르기 전 고산병 증세로 산소호흡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콜롬비아 당국의 노력으로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치안은 불안했다. 제복을 입은 현지 경찰 3명이 공연장, 호텔 등에서 항상 유니버설발레단을 경호했다.

이처럼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유니버설발레단은 한복과 한삼, 족두리 등 한국 전통 복장을 응용한 발레복을 입고 ‘심청’을 선보여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심청을 바다의 제물로 바치려는 뱃사람들의 군무 장면에서는 남자무용수의 회전 동작이 끝나기 전부터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효녀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팔려간다는 줄거리를 대사없이 전달했지만 관객들은 무용수들의 몸짓만으로도 내용을 파악했다.

특히 총천연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묘사한 용궁과 웅장한 궁궐 세트가 등장할때 객석에서는 ‘오~’ 라는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이번 심청 공연에 쓰인 무대장치는 40피트 규모의 대형 컨테이너박스 두대 분량에 달했다. 선박으로 운반하는 비용만도 1억원이 들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 아이다 토레스 곤잘레스(51)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였고, 한국 무용수들이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는 것이 느껴졌다”며 “콜롬비아 사람들은 다들 한번씩 봐야하고 배울 점이 많은 작품이라 또 공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대 딸과 함께 공연을 보러온 아이데 몬토야(52)도 “무용수들의 움직임만으로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며 “과거에 러시아 발레단의 공연을 본 적도 있는데 한국 발레가 감정 표현이 훨씬 더 풍부한 것 같다”고 밝혔다.


▶‘심청’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전형=초대 콜롬비아 문화부장관을 지냈던 라미로 오소리오 마요르극장장은 ‘심청’을 콜롬비아 국민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에 빗대며 양국 문화의 접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마르케스는 ‘백년동안의 고독’ 등을 통해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라미로 극장장은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은 ‘백년동안의 고독’의 주인공이 하늘로 올라갔던 것처럼 마술적 리얼리즘의 전형”이라며 “이번 공연은 콜롬비아에서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대단한 기회였고, 문화 교류가 앞으로 경제 등 양국간의 관계에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요르극장은 올해 한국 문화 콘텐츠를 소개하는 ‘코리아 컨템포러리’ 프로그램 중 하나로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을 초청했다. 이번 행사를 공동주최한 마요르극장과 아시아ㆍ이베로아메리카문화재단은 유니버설발레단 단원 및 스태프 74명의 항공료와 숙박비 및 개런티 등을 지원했다.

‘심청’ 공연은 한국을 알리는 것뿐만아니라 아직 콜롬비아 관객들에게 낯선 발레를 소개하기 위해 마련됐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콜롬비아는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아 클래식 음악, 연극 등 공연 관람이 생활화돼있다. 하지만 발레의 경우 콜롬비아 내 10~20명 규모의 발레단 2개가 존재할 뿐 이제 막 소개되기 시작한 단계다.

양삼일 아시아ㆍ이베로아메리카 문화재단 대표는 “‘심청’은 발레가 유럽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국의 정서를 담아 표현할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을 알리고, 콜롬비아에서 발레 대중화를 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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