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수학능력시험 22년 … 세월따라 달라진 입시학원가
인터넷 강의 인기에 기숙학원 성행 호황 누리던 서점·하숙집은 자연스레 사라져
학원강사도 관록있는 40~50대 보다 재미있게 가르치는 30대 젊은층이 대세로
대학수학능력시험 22년. 수험생들도 변했다. 수능의 역사와 함께 입시학원들도 변화를 경험했다. 유명 입시학원들도 그 바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덩달아 주변 상권도 달라졌다. 22년 간 꾸준히 바뀌어온 입시 환경에 입시 학원, 학원가도 그렇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중림동, 하숙집은 사라지고…=입시학원으로 유명한 종로학원이 위치한 서울 서대문구 중림동은 대입 수능이 지나온 시간의 두께만큼 많은 변화를 겪었다. 상경한 학생들의 숙식을 책임졌던 골목 한켠 하숙집들이 사라졌고, 서소문 공원과 길 건너 시장을 잇던 육교가 사라졌다. 학원생들에게 문제집과 교재를 팔던 서점도 자취를 감췄다.
학원이 변화를 절감한 것은 인터넷 강의의 보편화와 이에 따른 강사 연령대 저하다. 10년 전만 해도 수험생의 복합적 사고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관록있는 40~50대 강사들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키워주고 학습의 즐거움을 주는 30대 젊은 강사들이 주를 이룬다. ‘A=B’라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수용자(수험생)들의 수요를 반영한 흐름의 변화다.
이 학원 백영훤 원장은 “예전엔 40대 중반~50대 초반 선생님들이 강사 인력의 핵심이자 꽃이었다면 지금은 30대 후반~40대 초반 선생님들이 주력”이라며 “학생들에겐 재미있는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과과정의 변화도 주변 상권에 영향을 끼쳤다. 길 건너 위치했던 서점이 사라진 것은 그 단적인 예다. 2010년 수능과 EBS방송과의 연계율을 70%까지 늘리면서 다른 출판사의 문제집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고, 인터넷을 통한 교재 구매가 손쉬워지며 학생들을 상대로 문제집을 팔던 이곳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2000년, 최대 80여만 명에 달하던 응시인원이 점차 감소세로 접어들면서 한 반의 정원 수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곳 학원도 과거 교실 당 70명까지 늘어났던 학생 수는 현재는 55명으로 줄어들었다.
기숙학원들이 성행하면서 상경하는 지방 수험생들의 수도 감소했다. 자연스레 하숙집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이 지역에서 하숙집을 했던 이모(여ㆍ53)씨는 지난 2006년부터 음식점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이씨는 “이 근처 하숙집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며 “학사(기숙사 형태의 고시원)가 생기면서 하숙생이 점차 줄어들었고 특히 기숙학원도 생기면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학생들도 뜸해졌다”고 말했다.
예전에 있었던 엄정한 규칙들도 완화됐다. 반바지ㆍ염색 금지 등은 이곳의 독특한 문화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학교에서 두발자유화가 실시되면서 학원도 두발 규제를 하지 않게 됐고 복장 역시 자유로워졌다. 다만 여학생들에게 짧은 치마를 입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공시생 점령한 노량진 학원가=한 때 재수생들의 땅이었던 노량진. 그러나 지금 대학입시 학원은 10여개에 불과하고, 대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0~30대로 북적인다.
28일 오전 11시 동작구 노량진동 소재 학원가, 책가방을 멘 사람들은 대다수가 트레이닝복에 삼선 슬리퍼, 두꺼운 안경 차림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박기석(30) 씨는 “찬바람이 부는데도 운동화보다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경우 많다”며 “밖으로 나오는 시간은 적고 하루종일 실내에 앉아 있다보니 이게 편하다”고 말했다.
이곳 노량진에서 20년 넘게 살았다는 주민 최모(64) 씨는 “이곳으로 이사왔을 때도 여기 학생 대부분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앳된 20살들이었다”며 “‘노량진 재수생’이라는 말이 정말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1978년 2월 정부의 수도권인구 재배치 계획에 따라 대입학원들은 4대문 밖으로 이전하면서 대부분 교통이 편리한 부도심 지역에 자리잡았다.
특히 노량진이 재수생들의 메카로 떠오른 것은 교통이 편하고 서울 어느 곳에서 와도 멀지 중심에 있다는 지리점 때문이었다.
종합학원만 아니라, 한샘학원과 단과학원으로 유명한 정진학원 등이 종로에서 노량진으로 옮기며 많은 학생들이 몰렸다.
당시 이곳 풍경은 어땠을까. 노량진 주민 정모(여ㆍ59) 씨는 “당시에는 노량진뿐 아니라 대입 학원가 주변에는 재수생 거리라고 해서 카페, 술집, 당구장 등 재수생들을 위한 유흥 공간이 많아 요즘처럼 차분한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제 1984년에 발간된 일간지의 재수생 관련 기사를 보면 대학 입시학원이 몰려있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뒷골목엔 1㎢ 남짓한 공간에 오락실, 술집, 디스코텍 등 252개의 유흥업소가 몰려 있어 재수생들의 ‘천국’으로 불렸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노량진의 오후 1시는 사람들이 가장 북적이는 점심 시간이다. 도시락을 싸와서 학원 로비에서 먹는 학생도 있지만, 길거리의 포장마차 음식이나 근처 저렴한 식당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서울 응암동 집에서 노량진 학원으로 매일 출퇴근 하는 재수생 이모(20) 씨는 “점심에는 친구와 함께 주로 노량진 ‘컵밥’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이런저런 공부 얘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친구 박모(20) 씨는 “대학 다니는 친구를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여기서(노량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형님들을 보면 인생의 1∼2년 정도를 내 목표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그렇게 손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영규ㆍ이지웅 기자/ygmoon@heraldcorp.com
사진=문영규 기자/ygmoon@herla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