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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저 처럼 당신도 일 못한다고 팽(?) 당하셨군요
-페북 ‘일못테리안(일 못하는 사람들)’의 노닥거림 인기폭발
-일 못하는 사람들의 실수담들, 묘한 공감대 자아내 회원급증
-경쟁사회의 이면에 대한 촌철살인 해부 담겨 시사점도



[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8000만원 기안 결제서를 800만원으로 써서 올렸어요…. 상사가 한숨을 푹푹…”. “전자결재를 실수로 제목없이 올렸는데, 팀장님도 그냥 올리시고, 상무님도 그냥 올리시고…. 단체로 일 못하는 사람들…”.

2400여명의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씩 페이스북 담벼락에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다. 답답해도 너무 답답한 ‘일 못한 이야기’뿐이다. 지난 7월에 개설된 페이스북 페이지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 모인 ‘일못테리안(일 못하는 사람들)’들이다.

개설된 지 3개월 만에 2484명의 회원을 모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은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인 여정훈(30) 씨가 처음 만들었다. 

30명 정도 규모의 시민단체에서 1년 반 정도 일하던 여 씨는 어느날 자신이 무척 일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조직생활과 잘 안맞는 듯하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누군가는 조직에 잘 맞춰서 일할 수도 있지만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식인 것들이 생소하게 느껴졌다”며 “열심히 해보려고 도움을 청하기도 해봤지만 애초에 나에게 맞지 않는 구조였고, 이런 게 일이라면 나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일못하는사람 유니온’에 회원들이 게재한 회사에서의 실수 사례 사진.

자신의 SNS를 통해 이런 생각을 지인들과 공유하던 여 씨는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공론화하겠다는 구상을 했고, 삽시간에 입소문을 타고 수백 명의 회원이 모여들었다.

회원들은 각종 ‘일 못한 사연’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이면지에 ‘이면지’라는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실수로 백지에 찍었다”, “직원들과 공유하던 사진이 저장된 파일을 모두 지워버렸다”는 전형적인 실수에서부터 “술을 못 마셔서 보수적인 회사의 표적이 됐다”, “회사매출이 줄었다고 이제는 영업을 하랍니다”라는 회사의 부당한 처우까지 회원들이 내놓는 푸념은 색깔이 다양하다.

가입자 중에는 우연히 같은 회사 직원들이 댓글을 통해 조우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웃지못할 해프닝 안에는 몰개성적이고 획일적인 직원만을 필요로 하는 우리 조직문화에 대한 젊은이들의 통찰도 담겨있다. 여 씨는 “일 잘하는 사람이란 일 시키는 사람의 의중을 잘 파악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며 “협력보다는 경쟁이 더 중요해진 사회에서 일 시키는 사람의 눈치만 보며 일을 하다보니 오히려 업무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빠른 결과물만을 요구하는 분위기는 최근 세월호사건과 같은 대형 참사와도 연결된다”며 “하던대로 바르게 안전검사를 하는 사람들보다는 위에서 원하는 시간에 결과물을 도출하는 사람들을 일 잘하는 사람들로 평가하다보니 안전하지 못한 사회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 씨는 “이런 상황에서는 업무의 완성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일 못하는 사람’이 본인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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