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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 녀석들] 대본ㆍ캐릭터ㆍ사전제작…장르물의 진화, 시청자도 움직였다 ②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올 한 해 안방 TV드라마는 장르물의 천국이었다. 지상파 방송사 SBS에선 올초 ‘신의 선물’, ‘쓰리 데이즈’를 편성하며 막강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시청자들에게 ‘장르물’의 접근성을 높였다. 비슷한 시기 케이블 채널 CJ E&M에선 ‘갑동이’ 등의 작품을 내놓으며 시청자와 만났다.

장르물이 범람했으나, 시청자들의 실망감도 적지 않았다. '끼워맞추기'  식 수사과정을 통해 엉성한 얼개가 나오거나, 시청자가 이해하기엔 지나치게 어려운 이야기로 '범인찾기'에만 몰두했다.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이도저도 아닌 장르물이 나오기도 했고, 국내 드라마의 고질병으로 치부되는 ‘멜로 코드’의 습격으로 시청자들의 원성이 높다. 


OCN의 경우 ‘신의 퀴즈’를 비롯해 ‘뱀파이어 검사’, ‘특수사건 전담반 텐’ 을 거치며 현재의 ‘나쁜 녀석들’에 이르기까지 숱한 장르물을 선보이며 나름의 공식을 만들었다.

지난 4일 첫 방송된 ‘나쁜 녀석들’은 기존 장르물을 뛰어넘은 OCN의 진화를 보여준 작품으로 호평받고 있다. 방송 이후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금세 드라마의 제목으로 도배되며, 방송 4회 만에 막강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

‘질 좋은 작품’은 시청자가 먼저 알아보는 법이다. 드라마는 4회까지 방영된 현재 평균 3.7%, 최고 4.5%를 기록하며 역대 OCN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귀신보는 형사 처용’ 평균 3.4%, 최고 3.8%)을 갈아치웠다. 10월 3주차 주간 VOD 매출을 집계한 결과, 2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최근 종영한 ‘왔다! 장보리’를 제외하고, 지상파 포함 현재 방영 중인 프로그램 중 1위를 기록했다. (집계기간=10.13~10.19 / 매출단위: PPV매출, 과금기준 총매출 / 플랫폼: TV, 온라인, 모바일) 

조문주 CJ E&M 프로듀서는 “작가, 감독, 촬영감독은 물론 OCN까지 그간 차근차근 장르물 제작의 노하우를 쌓아왔다. 실패를 통해 배운 것도 있고 보완도 했다”며 “특히 ‘나쁜 녀석들’의 한정훈 작가는 멜로도 막장도 원하치 않는 채널의 니즈를 정확히 알고 표현했다. ‘나쁜 녀석들’이 OCN 장르물의 기폭제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쁜 녀석들' 1화 방송분 캡처

▶ 소설을 읽는 듯한 대본= 방송가 관계자들이 이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첫 번째는 바로 대본이었다.

주택가 골목길 : 늦은 밤 내리는 비가 차창을 적시고, 으슥한 골목길에 차 한 대가 보인다. 조수석에 앉아 남형사를 촬영하는 VJ. 노든 시점이 그의 촬영 시점으로만 보인다.

“남형사 (조그맣게) : 반년 정도 전부터 서울 동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인데요, 비 오는 날 지나가는 여자 아무나 골라잡고 (칼로 찌르는 시늉) 그냥! 지금은 그 새끼 범행 동선 파악해서 잠복 중인 상황입니다.”

“남형사 : 그게요. (잠시 생각하다가) 인간 남건욱은 무서워해도 된다는데, (자조적인 미소) 형사 남건욱은 무서워하면 안된다네요, 사람들이.” 

-‘나쁜 녀석들’ 1화 첫 번째 신-

너나없이 “파격적이고 참신하게 잘 쓴 대본”고 입을 모으는 드라마는 OCN에서 ‘뱀파이어 검사’ 시즌1, 2를 집필한 한정훈 작가의 작품이다.

조문주 프로듀서는 “한정훈 작가는 대본을 소설처럼 쓴다”며 “배우와 감독이 상상이 가능하게끔 상세하게 설명한다. 어떤 감정과 마음으로 표현해야하는지를 상세하게 글로 옮긴다”는 특징을 설명했다.

한 작가는 이에 대해 “드라마는 대본과 만들어지는 영상에 오차가 줄어들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에 지문과 대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편”이라고 했다. 

▶ 수사보다는 캐릭터=구체적인 대본을 바탕으로 태어난 장르물 ‘나쁜 녀석들’은 기존의 장르물과는 다른 지점에 놓인 독특한 작품이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나쁜 놈’들이 더 ‘나쁜 놈’들을 잡는다는 데에서 출발한 드라마는 사건을 수사하고 추리하는 과정보다는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 드라마가 전개된다.

기존의 장르물이 배배 꼬인 어려운 수사로 ‘범인 찾기’에 몰두하면서도 끼워맞추기 식의 전개로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기도 했던 것과는 다른 지점에 있다.

한정훈 작가는 “시청자들이 장르물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건과 수사과정을 너무 꼬니 어려워서 보지 않는 것도 있다”며 “‘나쁜 녀석들’의 경우 지금까지 OCN에서 방영된 장르물 중 가장 단순한 작품이다. 대신 캐릭터의 감정 위주로 움직이는 ‘쉬운 장르물’이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에선 ‘미친개’라고 불리는 강력계 형사 오구탁(김상중)을 중심으로 조직폭력배 행동대상 박웅철(마동석),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이정문(박해진), 청부살인업자 정태수(조동혁)의 조합으로 매회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간다. 한정훈 작가는 “형태는 수사물이지만, 이야기 구조는 히어로물”이라며 “절대선만을 추구하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티히어로의 서사구조를 가졌다”고 설명한다.

캐릭터의 조합도 철저한 자료조사를 거쳐 “서로의 장단점이 겹치지 않는 인물들로 구성”했다. 그러면서도 범죄자들의 사건 해결 과정에서 난무하는 지독한 폭력과 거칠 것 없는 액션 스릴러에 시청자의 공감을 높이기 위해 한 작가는 “나쁜 사람이지만 악인으로 보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염두하고 글을 썼다”고 한다. 각각의 캐릭터가 사람을 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며 겪는 감정의 변화가 비치고,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3회분에서 정태수가 애타게 찾던 여자가 곤경에 처하며 진짜 ’악‘을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 그렇다. 캐릭터의 감정에 따라 드라마가 이동하니 시청자들의 공감대와 몰입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나쁜 녀석들’이 내세운 캐릭터 위주의 수사물은 결국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과도 닿아있다. 5회 이후 주인공들의 과거 사연과 사건에 집중하게 될 드라마에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범죄자가 미래의 범죄자는 아니며, 사람들은 항상 변화하는 존재”라는 걸 보여줄 예정이다.

▶ 완성도 높인 사전제작 시스템=순수 대본 집필기간 1년, 올초 대본 탈고, 7월 첫 촬영 시작, 지난 26일 마지막 촬영. 이르면 지난해 방영될 수 있었던 ’나쁜 녀석들‘은 굳이 편성을 늦춰가며 10월 초 안방을 찾았다. 덕분에 제작기간은 길었고, 그만큼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애초 대본 집필 과정에서 해당 배우들을 염두하고 글을 썼다”는 한 작가는 배우들의 캐스팅 단계에서 총 11부작 중 9부까지의 대본을 전달했다. 배우 박해진의 경우 올초 종영한 ‘별에서 온 그대’(SBS)의 촬영을 들어가기 이전에 ‘나쁜 녀석들’의 대본을 받아보고, 출연을 결정했을 정도다. 기존 드라마 캐스팅 단계에서 많아야 2회분까지 대본이 전달되는 것에 비한다면 상당히 빠른 속도다.

반(半) 사전제작 시스템으로 태어난 ‘나쁜 녀석들’은 때문에 기존 드라마 제작환경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최근 만난 조문주 프로듀서와 한정훈 작가도 드라마 사전제작의 장점에 대해 수차례 언급했다.

장르물의 특성상 1회에 언급된 사건이 드라마 후반 똑같은 장면으로 다시 나오며 수사의 조각을 맞추는 사례가 많다. 같은 설정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는 퍼즐식 구조인데, 대본이 이미 완성된 상태이니 배우들의 이해도가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 조문주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연출에 있어서도 충분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올초 마무리된 대본을 토대로 영상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감독, 촬영감독, 작가가 한 자리에 모여 호흡을 주고 받았다. 특정 액션신이 나오면 장르물을 많이 촬영해온 연출부에서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 찍기 힘든 장면은 수정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이 때문에 대본과 영상의 차이가 줄게 된 것 같다”(조문주 프로듀서)고 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100% 흡족한 영상 구현이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한 작가 역시 “대본과 영상의 오차가 줄었다”며 만족감을 전했다. 뿐아니라 “혼자 작업을 하다 보면 자기 안에 갇히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야기를 나누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공유할 수 있는 생각이 돼 이야기를 전해하는 데에도 힘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쪽대본의 압박 없이 여유로운 촬영을 진행하니, 후반작업에도 공을 들여 OCN이 자랑하는 고퀄리티의 영상도 만들어낸다. 조문주 프로듀서는 “‘나쁜 녀석들’의 경우 촬영을 하면 일주일 간의 편집 과정, 음악 등 후반 작업이 일주일이 걸린다. 토요일 본방송의 마스터 테입이 나오는 작업까지 꽤 오래 걸린다. 특히 재방송의 경우 19세 방송을 15세로 다시 편집해야 하는 과정도 거친다”며 “후반작업에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사전제작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과정이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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