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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imagine 디자인으로…> “Less is More”
-간결함에서 디자인의 정수 찾는 영국 왕립건축사, 백준범 건축가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Less is More”

건축 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을 한 마디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백준범(42ㆍ창조건축 상무) 건축가가 답이다. 그는 “무엇이든 더 많이 덧붙이는 것은 오히려 쉽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결과는 분명한 지향점 없이 모든 것들이 뒤섞인 것이 되고 만다”며 “자신감을 갖고 처음 모티브 그대로를 표현해낼 수 있도록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낼 때 디자인의 정수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 디자인의 핵심을 표현해내는 과정은 영화 제작이나 조각 작품을 만드는 것, 잘 편집된 기사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근본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원석 속에서 순수한 크리스탈 결정체를 솎아내는 과정처럼 건물을 짓는 과정 역시 모든 사람의 공감을 얻어내고, 주변 환경과 어울릴 수 있도록 ‘덜어내는 과정’이라 보기 때문이다.

살을 붙이기보다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낼 때 디자인의 정수가 드러난다는 백준범 건축가는 앞으로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은 도태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 디자이너의 자유와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며 선진국에서 배울 것도 많지만 한국만의 강점과 특성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백 건축가는 여기에 기다림과 노력이란 ‘시간’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건축에 있어 좋은 디자인이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며 “오랜 시간에 걸쳐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다듬어가는 과정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건축 디자인에 대한 그만의 철학은 오랜시간 화려한 경험을 쌓으며 만들어진 것이다.


15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백씨는 미국의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과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석사를 마친 후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설계사무소를 거쳐 ‘포스터 앤 파트너스’에서 일하면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영국 왕실로부터 영국 왕립건축사의 호칭을 받기도 한 그는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세운 건축사무소 ‘포스터 앤 파트너스(Foster and Partners)’에서 근무하며 지난해 완공된 미국 뉴멕시코주에 세계 최초의 민간 우주공항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Spaceport America)’의 설계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20년이 넘는 해외 생활 후 지난 2012년 귀국한 그는 현재 국내에서 활약 중이다. 지난해에는 BMW의 플래그십 세단인 7시리즈의 홍보관이자 고객 소통 공간의 역할을 하는 ‘모빌리티 라운지’의 디자인 작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이 라운지 역시 기존의 설계 방법과는 다르게 목재로 여러 모양의 블록을 만들어 필요에 따라 새로운 모양으로 조립해 협곡처럼 흐르는 곡선 벽을 구현해 냄으로써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얻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그가 한국 건축 디자인 환경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점은 바로 ‘개방성’이었다.


백 건축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세기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에게 충분한 자금을 지원하면서도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를 허락한 든든한 후원자 메디치가(家)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한국 역시 건축가에게 디자인을 의뢰하는 기업이 자신들의 기본적인 브랜드 가치만 충족된다면 디자이너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무한한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함으로써 건축 디자인의 수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건축 디자인에서도 외국의 것은 무조건 좋다는 ‘사대주의’적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 같다”며 “선진국에서 배울 것도 많겠지만 한국만의 강점과 특성을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준범 건축가는 앞으로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건축물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도 건축물에 대한 심의 과정에서 에너지를 어떻게 절약하고 신재생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할 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향후 건축 디자인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말했다. 


다만, 비용과 같은 현실적인 제약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건축 디자인에 있어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거나 그레이워터(하수) 재사용 등의 개념을 도입한 것은 불과 20~30년에 불과하며 여전히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며 “지속가능성과 비용으로 대표되는 효율성간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것이 지금 건축 디자인이 맞닥뜨린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이런 그가 요즘 푹 빠져있는 소재가 탄소섬유다. 기존에 빌딩 구조물로 쓰이던 철골 구조물보다 강도는 10배 가량 세기 때문에 충분히 대체할 수 있으면서도 무게는 4분의1 정도로 운반 비용과 같은 제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무거우면서도 깨지기 쉬운 유리를 대체할 수 있는 초극박막 불소수지 필름(ETFE) 역시 백 건축가의 관심을 끄는 소재다.

이같은 장기적인 꿈 이외에도 백 건축가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 생활 공간을 변화시킴으로써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이런 그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바로 직장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사무 공간이다.

그는 “항상 같은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 짠다고 창의적인 생각이 탄생하진 않는다. 수시로 공간과 시야를 변화할 수 있고, 공간 그 자체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오는 것”이라며 “딱딱한 직선 중심의 사무공간 디자인에서 벗어나 곡선미를 살린 테이블을 배치하고, 소파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 등으로 보다 역동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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