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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정제욱> 환풍구 안전 최강국을 위하여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가슴에 와닿는 적도 없지 싶다. 자칫 한 걸음만 잘 못 내디뎌면 천길 벼랑으로 떨어질 것같은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멀쩡한 도로가 내려앉고, 땅 속에는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세상이 아닌가. ‘이러다 하늘과 땅이 딱 붙어버리는 건 아닐까…’, 우스갯소리로만 여겼던 고사 속의 기우(杞憂)가 어쩌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판교에서 또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도대체 올해만 몇 번째 대형 인명 사고인지 이젠 헤아리기조차 두렵다. 지난 4월, 세월호가 침몰하는 초대형 재난을 당하자 한국은 당장이라도 안전 최강국으로 거듭날 기세였다. 안전은 모든 가치의 최우선 기준이 됐고, 급기야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말 뿐이었다. 손에 잡힐 듯하던 ‘안전 대한민국’은 점차 희미해지고 사회 갈등과 정치적 이해만 춤추고 있다. 소를 잃고 외양간 고치자는 소리는 무성한데 정작 못 하나, 망치 한자루 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도 진행형인 세월호 수습 과정을 보면서 얻은 또 다른 교훈이 있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다 해결하려 들다가는 한 가지도 제대로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정부와 지자체는 대대적인 시설물 안전 점검에 나서는 등 연일 호들갑이다. 국회는 관련자 호통치기 바쁘고, 시민의 안전의식 부재를 한탄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대책도 속속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관심이 식으면 언제 그랬냐는듯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늘 이런 식이었다.

이번에는 접근 방법을 아예 달리해 보는 건 어떨까. 딱 한 가지씩만 확실하게 개선해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고가 되풀이도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은 환풍구 안전이다. 판교 사고는 환풍구 덮개에 한번에 많은 사람이 올라가는 바람에 무게를 못 이겨 일어났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환풍구 안전 관리 하나는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차례 무심히 지나치던 환풍구에서 대형참사가 일어나리라곤 누구도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의하면 크고 작은 환풍구가 전국에 5만개 이상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보행자 도로에 설치돼 있다. 물론 보도로 이용되면 더 높은 안전기준이 적용되겠지만 제 2, 3의 판교 사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관리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래서 이참에 환풍구 안전 관리 시스템 하나라도 똑 소리나게 갖춰보자는 것이다. 규정이 없다면 새로 만들고 사문화됐다면 꼼꼼히 보완하면 될 것 아닌가.

유족과 주최측간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판교 사고는 빠르게 수습되고 있다. 불행중 다행이다. 하지만 본질은 유사 사고의 재발 방지다. 특히 경기도와 성남시는 내 탓, 남의 탓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책임 소재는 검찰 수사를 보고 가리면 된다. 그 보다는 어떻게 하면 환풍구 관리를 더 잘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게 희생자와 시민들에게 잘못을 사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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