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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드카펫’ 윤계상 “에로영화 찍었다는 감독님, 오히려 호감”(인터뷰)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극장이 이렇게 많은데 왜 니 영화는 안 나오니?”

영화 ‘레드카펫’의 주인공인 에로영화 감독 정우(윤계상 분)는 부모님의 천진한 질문에 고개를 떨군다. 10년 째 300여 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과 4대보험’을 위안삼고, ‘조금만 더 버티면 입봉’이라는 희망고문에 주저앉길 반복하다보니 10년이 흘렀다. 주위의 편견과 멸시를 딛고 정우는 자신 만의 영화를 찍기로 한다.

정우는 ‘레드카펫’ 박범수 감독의 분신이기도 하지만, 연기 10년 차에 접어든 윤계상과도 닮았다. 스크린에서 그는 늘 그늘진 얼굴이었다. 호스트의 공허한 삶을 연기했던 ‘비스티 보이즈’(2008)부터, 사형 집행을 앞두고 번민하는 교도관(‘집행자’, 2009), 생존을 위해 철조망을 넘나드는 남자 (‘풍산개’, 2011)까지. 작품을 선택할 때면 ‘진지한 연기를 통해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컸다. 언제부턴가 윤계상은 일상에서도 ‘음지’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레드카펫’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윤계상은 웃음이 넘쳤다. 전투하듯 연기했던 과거보다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입에선 ‘감사’, ‘행복’ 등 긍정적인 단어가 술술 나왔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연인에 관한 질문에도 “(이)하늬가 워낙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라며 솔직담백하게 애정을 드러냈다. 다시 소년같은 웃음을 되찾은 그가 반가웠다.



# “난 10년 째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에로감독이다” -에로영화 감독 정우의 내레이션

박범수 감독님이 실제로 에로영화 감독이었단 걸 알고나서 오히려 호감이 커졌어요.”

처음엔 그저 ‘레드카펫’ 시나리오가 재밌어서 박범수 감독을 만났다. 알고보니 영화 속 에피소드엔 감독의 경험담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극중 정우의 부모님이 과수원을 운영하는데, 실제로 박범수 감독의 아버지도 포도농장을 하신다고. 정우가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주말의 명화’를 보고 즐거워하며 영화감독을 꿈 꾸는데, 이 또한 박범수 감독의 이야기였다. 

“감독님은 너무 좋은 사람이예요.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죠. 덕분에 많이 밝아졌죠. god 노래가 나오기도 전에 감독님께 먼저 들려줬어요. 얼마 전엔 콘서트장에 오셔서 엄청 우시더라고요. 하하.”

‘레드카펫’ 촬영 현장은 연극영화과 졸업 작품을 찍는 분위기였다고 윤계상은 떠올렸다. 입답 좋은 오정세, 조달환 등에 유쾌한 박범수 감독까지 모이면 수다 떠느라 촬영이 지연될 정도였다. 윤계상은 특히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이돌 출신인 황찬성을 보면서 감회가 남달랐다.

“정말 공부하고 오나 싶을 정도로 너무 잘하더라고요. 제가 몸으로 부딪혀 3-4년에 걸쳐 익힌 걸, 이 친구는 첫 영화에서 뿜어내던 걸요? ‘잘한다’ ‘고맙다’ 싶었죠. 실력있는 친구들이 나오면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잖아요.”



# “이 바닥 10년하면? 가라앉는 거지” -정식 입봉할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우의 자조적 대사

“예술을 하려면 스스로 피폐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위장을 끄집어내서 보여줘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윤계상은 2004년 ‘발레교습소’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하면서, ‘장난치지 말고 진정성 있게 연기해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는 현장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하는 것이 영화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며 연기하다 보니, 일상으로 복귀해서도 자신도 모르는 새 ‘끝없이 가라앉았다’.

그 무렵엔 혼신을 다한 작품이 인정받지 못하면 좌절감에서 헤어나오질 못 했다. 소규모로 개봉한 독립영화의 경우엔 각오한 부분이었지만, 사전 제작으로 화제가 됐던 드라마 ‘로드 넘버 원’(2010)은 경우가 달랐다. 대중의 무관심이 뼈 아프게 다가왔다. 

“사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억울한 게 있더라고요. 6개월 동안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현장에서 진흙 먹어가며 촬영했는데 ‘왜 안볼까’ 싶었죠. 이대로 작품이 사라지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러다보니 밝은 내용의 시나리오는 계속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는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역할만 찾아다니며 고집스레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연기자로서는 차츰 인정받았지만, 말수도 웃음도 줄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 “어머니 아버지는 꿈도 없어요?” -영화 찍는 일 대신 다른 직업을 찾으라고 종용하는 부모님에게

2년여 전부터 윤계상은 그의 말마따나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연인 이하늬는 물론, god 멤버들, 박범수 감독 등 밝은 기운의 주변인들 도움이 컸다. 스스로 어두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도 몰랐던 낙천적인 면을 발견했다. 연기에 임하는 자세도 한결 편안해졌고, 인정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조금은 떨쳐냈다.

“예전에는 연기에 대한 부담이 커서 제 모습을 보여드리는 데만 급급했다면, 이제는 작품의 전체적인 조화를 많이 신경쓰는 것 같아요. 흥행이 신경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거기에 너무 매달리다보면 힘들어지잖아요. 영화를 본 입장에서 (박범수) 감독님이 인정받으실 거란 확신이 있고, 배우들에게도 득이 될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만족해요.”

연기자나 가수가 아닌 ‘인간’ 윤계상의 꿈은 ‘지금처럼 행복하게, 매일을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거쳤던 어두운 터널을 똑같이 경험하고 있을 지 모를 연예계 후배들에게 언젠가 손 내밀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에 누구나 힘든 시기가 오는데, 그 시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분야에 열심히 매진해도 그 결과치가 바로 안 오고 안 좋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주위에 누군가 있으면 금방 (양지로) 올라오게 되죠. 오늘을 살아야 내일 또 희망이 생기는 건데, 내일을 걱정해서 오늘을 살면 불행해지더라고요.”



<연관검색어 파헤치기> ‘god 윤계상’

“god 재결성은 정말 신의 한 수였어요.”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god가 다시 뭉친 건 일대 사건이었다. 멤버들의 입장에선 3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 무대에 다시 선다는 것이 설렘보다 고민이 큰 일이었다. 특히 팀 해체의 불씨로 지목됐던 윤계상의 입장에선 걱정이 몇 배는 더 컸다.

“(재결성을) 고민하던 찰나에 기사가 나오니까 멤버들이 걱정을 많이 했죠. ‘형 또 오해받고 욕 먹는 거 아니냐’고.(웃음) 살면서 기회가 몇 번 오는데,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선택하는 사람이 있죠. 분명한 건 좋은 마음으로 선택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온다는 거예요.”

그렇게 지난 5월 발표한 ‘미운오리새끼’는 기존 팬들은 물론, god가 낯선 연령층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콘서트 두 번만 하자’고 했던 게 매진 행렬로 이어졌고, 당초 한 달로 예상했던 god 활동은 5개월까지 길어졌다.

“콘서트 때는 내가 노래하는 건지 팬들이 부르는 건지 모를 정도였어요. 가사를 틀려도 모르시더라고요. 춤을 못 춰도 ‘늙었으니 괜찮아’ 하는 식으로 봐주시고. ‘레드카펫’ VIP 시사회 때는 팬들 덕분에 제가 아이돌인 줄 알았어요.(웃음)”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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