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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기자의 세상읽기> 너무 쉽게 판 벌리는 사회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판교사태, 정확하게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를 주말 내내 뉴스로 접하면서 기자는 줄곧 ‘경박성’이라는 단어에 포로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쉽게말해 냄비근성 말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접목됩니다. 우선 하나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습관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너무 쉽게 판을 벌리는 우리네 놀이근성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안전’이라는 말은 귀가 닳도록 듣습니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면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출범 일 년 남짓 지나 ‘세월호 참사’로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세월호 사고의 전조는 분명 있었습니다. (뒷부분에 언급이 있겠지만) 두 달 전 한 리조트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대학생들이 행사장 천정 붕괴로 10여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바로 그 것입니다. 인재라며 난리법석을 치더니 멍석도 말기 전에 사상 최악의 참사를 당한 겁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 현장(2014)

그러고 보니 내일(21일)은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난지 20년째가 되는 날입니다. 지난 5월 세월호참사 한 달이 되던 날 기자는 헤럴드경제 인터넷판에 ‘한국병’이라는 칼럼을 게재한 적 있습니다. 50대 중반을 살아오면서 툭하면 겪었던 참으로 끔찍했던 대형 (인재)사고에 대한 기록을 담은 것입니다. 그 일부를 옮겨 봅니다.

『1993년 10월 전북 부안 앞바다 훼리호 침몰사고로 29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악천후인데도 정원보다 무려 141명이나 더 태운게 문제였습니다. 이보다 석 달 앞서 아시아나 여객기 사고로 68명이 사망했고, 또 석 달 앞서 구포역 열차 충돌 사고로 78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듬해인 1994년 성수대교 붕괴로 32명이 목숨을 잃더니 1년 뒤에는 삼풍백화점이 폭삭 내려앉아 501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습니다. 이듬해 미국 괌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추락해 225명의 인명피해를 냈고 또 2년 뒤 경기도 화성 ‘씨랜드’ 화재사고로 유치원생 19명 등 23명이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현장(1994)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를 냈고 2년 뒤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붕괴사고로 9명 사망했습니다. 2010년 3월 에는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천안함(초계함 PCC-772)이 북한군에 의해 폭침을 당해 장병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습니다. 이듬해 7월엔 우면산 산사태로 18명 사망했고, 같은 큰 비로 소양감댐 부근에 산사태가 발생해 인하대 하계봉사단 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해 7월 노량진 배수지 지하공사장 수몰로 인부 7명이 사망했고, 사흘 뒤 충남 태안 앞 바다 해병대 캠프 참가 고교생 5명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같은 달에 방화대교 상판이 붕괴로 2명이, 12월엔 부산 북항대교 접속도로 부분 붕괴로 4명이 희생됐습니다.

올해 역시 출발이 좋지 않았지요. 바로 2월에 터진 경주 마우나 오션 리조트 강당(체육관) 천정 붕괴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부산외국어대생 9명과 행사관련 직원 1명 등 총 10명이 사망했습니다.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1995)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 때 글에도 적었지만 대형 사고에서 사망자 및 실종자 수만 적는 것은 큰 오류입니다. 그로 인한 남아있는 가족들, 부상당한 이들의 고통은 또 어떤가요.

이번 사고의 직접 원인인 ‘살인 환풍구’는 서울에만 6000곳이나 된답니다. 20일자 중앙일보 1면 톱기사에 난 명동역 인근 지하철 환풍구 위를 기자는 십 수년 동안 거의 매일 걸어 다녔습니다. 헤럴드경제 명동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 곳은 아예 인도의 3분의 2가 지하철 환풍구입니다.

쉽게 잊어버리는 냄비근성도 문제지만 시도 때도 없이 판을 벌이는 우리네 놀이근성도 큰 문제입니다. 이번 같은 유사한 행사는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봄이나 가을에는 크고 작은 야외공연이 줄을 잇습니다. 앉을 곳 설 곳 가리지 않는 동네 무대까지 치면 그야말로 ‘북새통 공화국’입니다.

차분하게 짚어 볼 때입니다. 행사가 과연 타당한지 두루 고민해 보고 이어 위험요인은 없는지 철저히 따져봤다면 이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관객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의 덫에 서거나 난간에 앉거나 심지어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잠시 자문했다면 답을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백약이 무효가 아닌게 아니라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자세 하나면 족합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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