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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함영훈> 이 가을, 그대를 만날때면 이렇게 포근한데…
앤서니 홉킨스는 1992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고 66세 되던 2003년 헐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정도로 가장 성공한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랬던 그는 그러나 어릴적부터 작곡가가 꿈이었다. 최고 배우임에도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74세 되던 2011년, 그는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의 띠동갑 연하 음악가 앙드레류 단장에게, 마치 음악 연습생 같은 목소리로 수차례 전화를 건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 작곡해둔‘ and the waltz goes on’을 한 번 훑어보고 연주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함이다.
앙드레류는 그해 가을 연주회 때 홉킨스의 평생 꿈을 풀어놓았다. 관객들이 어깨춤을 추는 사이 칠순의 새내기 작곡가는 감격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곡의 제목처럼 홈킨스의 꿈은 70여년 계속돼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거짓 사랑, 변심한 사랑, 헤어짐을 뒤늦게 후회한사랑, 지금도 생각나는 풋사랑, 우정으로 포장돼 더 아픈 사랑, 노부부의 이불속 장난 같은 사랑….

사람수 만큼, 70억 종류로 추정되는 사랑은 모습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열정일지도 모른다는 상념은 곱사등 어릿광대 리골레토의 딸 질다가 부른 애절한 아리아 ‘그리운 이름이여(Caro Nome)’ 때문에 생긴다. 가난한 학생이라고 속이며 질다에게 접근한 만토바 공작의 유혹이 결국엔 거짓 사랑으로 귀결됐지만, 아리아에 스민 사랑의 열정은 굳이 참과 거짓을 따지려 하지 않는다.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가 던지는 상념의 양은 백팔배 때 떠오르는 번뇌 만큼이나 많고, 일상에서 복잡다단하게 꼬인 마음을 새기고 삼키다 마침내 하나 둘 풀어내게 한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마단조 작품 64에 대해 국내 최고 여성 마에스트로 김봉미는 이렇게 소개한다“. 4개 악장이 몽환과 장엄, 폭풍전야의 격정을 넘나들고, 느리거나 물 흐르듯 유려한 네박자와 비교적 빠른 템포의 세박자가 크로스오버하며 다채로운 매력을 선사한다”고.

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도입부가‘ 그대를 만날때면 이렇게 포근한데’로 시작하는 가수 민혜경의 노래‘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와 꼭 닮았다는 점이라고 한다. 김봉미는“ 한국에선‘ 민혜경 교향곡’이라고도 하는데, 유럽에서 이 소리 하면 큰일난다”는 너스레로 관객과의 거리를 좁힌다.

아름다운 선율이 공감 가는 이야기와 버무려지면서 감동을 전하는 것은 비단 홉킨스, 베르디, 차이코프스키 뿐 만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는 감동이 우리 주변에 있는데…. 음악을 글로 쓰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감동의 정체가 뭔지 만나러 갈 수밖에 없다.

저마다 여러모로 힘든 나날들이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중략)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의 시는 우리를 위로한다. 스토리를 꽉 채운 클래식 선율의 감동과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을 향한 희망의 시어들은 이 가을, 필부필부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도 남는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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