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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전지원> 대법원의 역할과 상고법원 도입
대법원은 2005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종중 구성원 자격을 성년 남자만으로 제한하는 관습법이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돼 온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 사상 최초로 성년 여성의 종중원 자격을 인정했다. 또 2006년에는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면서 호적상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 이 처럼 대법원은 개인의 신분이나 재산관계를 넘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파급력이 큰 분쟁을 헌법과 법률이 보호하는 사회의 근본가치에 기초해 해결함으로써 정의와 형평을 실현해 왔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며 때로는 출구가 없어 보이는 충돌을 겪기도 하는 우리사회에서 대법원의 이러한 역할은 앞으로 더욱 절실하게 요청될 것이다.

대법원이 사회ㆍ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사건을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해 충실하게 심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사건으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상고허가제가 폐지된 후 1991년 1만 건을 돌파한 상고사건은 2004년 2만 건을 넘어섰고, 올 연말에는 3만7600건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필자는 2008년부터 5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는 데, 2008년에 2만8000여건 이던 사건수가 불과 7년만에 1만여건 가까이 증가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건 부담의 상당 부분을 간이하게 사건을 종결하는 심리불속행제도로 해결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듣지도 못한 채 상고가 기각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어느 것 하나 권리 구제에 대한 개별적 염원을 담고 있지 않은 사건이 없다는 데에 대한 대법원의 고민도 있다.

대법원이 최근 상고법원안을 마련한 것은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서 최고 법원 본연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권리구제 기능이 조화롭게 강화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지금은 모든 상고심 소송사건을 대법원에서 담당하지만, 상고법원을 별도로 설치해 상고사건 중 일부를 담당하게 하자는 것이다. 대법원의 일차적 심사를 거쳐, 사회와 국민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건은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이 처리하고, 개별적인 분쟁사건은 경력이 많은 판사로 구성된 상고법원이 맡게 된다.

상고제도 개편을 놓고 하급심 재판을 강화하는 데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법원은 상고제도 개편과 병행해 하급심 강화를 위해서도 민사재판에서는 충분한 쟁점 심리와 폭넓은 증거조사를 통해 합리적으로 분쟁이 해결될 수 있도록 심리방식을 개선할 계획이다. 또 형사재판에서는 단독판사들로 구성된 재정합의부 운영을 활성화해 중요 사건은 합의체에서 신중하게 처리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상고제도의 현황은 하급심 강화나 소송 이외의 대체적 분쟁해결 절차의 확대 등으로 해결될 수 있는 한계를 이미 오래 전에 넘어섰다. 그러기에 상고제도 자체의 개선은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일이다.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우리 사회의 정의와 국민의 권리는 대법원과 상고법원 양쪽에서 더욱 강력하게 보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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