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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미술관만 5개…‘괴물 컬렉터’ 김창일
서울 아라리오뮤지엄 이어 제주 뮤지엄 4곳 오픈
예술향한 열정 35년…작품 3700점 수집
“꽂히면 무조건 산다” 편견마저 삼켜

작품 활동하며 ‘문화복합단지’조성 꿈
美 잡지서 7년째 ‘세계200대 컬렉터’에
오너 겸 슈퍼 컬렉터 ‘한국의 찰스 사치’


시작은 터미널 한 귀퉁이 매점에서부터였다.

천안의 버스터미널을 채권으로 받은 사업가 어머니는 오남매 중 셋째 아들에게 월 300만원씩 임대료를 주고 매점을 쓰라 했다. 경희대 경영학과 재학시절 공부보다는 돈을 버는 데 미쳐 있던 스물일곱 청년은 1970년대 중반 당시 이미 건설ㆍ금융 주식 투자로 집 3채에 해당하는 돈을 벌어들이며 소위 ‘대박’을 치고 있던 중이었다. 돈이 곧 ‘꿈’이었던 청년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매점을 개ㆍ보수해서 운영하기 시작했고 또 다시 억대를 벌어들인다. 그의 나이 갓 서른. 김창일(63) (주)아라리오 회장이 수천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천안의 향토 사업가, 예술에 눈을 뜨다=천안터미널 매점에서 시작된 사업은 야우리백화점, 야우리시네마로 확장된다. 1989년 신부동으로 천안고속터미널을 이전한 후 250억원을 들여 터미널ㆍ백화점ㆍ갤러리를 한 블록으로 모은 ‘아라리오 스몰시티’를 세우게 된다.

야우리백화점은 지난 2010년 신세계백화점과 경영 제휴를 통해 신세계백화점 충청점으로 전환됐다. 신세계백화점 측에 브랜드 로열티를 내고 운영은 (주)아라리오에서 맡고 있다. 이 백화점에서 벌어들이는 돈만 1년에 3500억원 규모다.


백화점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야우리시네마는 천안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다. 인근 대학가 젊은이들이 데이트 약속을 잡을 때 “야! 우리 오늘 야우리에서 보자”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서는 야우리시네마가 전국 314개의 극장 중 관람객 순위 9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천안고속터미널 사업이 안정 단계에 접어들고 성공한 향토 사업가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김 회장은 예술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이후 35년동안 미국, 뉴욕, 아시아 등 전세계 미술관과 갤러리를 ‘순례’하며 3700여점이라는 방대한 규모의 미술품을 무섭게 사들인다. 그리고 2002년 천안을 시작으로 2005년 중국 베이징, 2006년 서울, 2007년 뉴욕 첼시, 2014년 중국 상하이까지 잇달아 갤러리를 오픈하기에 이른다. (현재 뉴욕과 베이징 갤러리는 철수한 상태다)

▶얼마라도 좋다…꽂히면 산다=10여년 동안 갤러리를 운영하며 ‘정글’과도 같은 미술시장에서의 생존 법칙을 터득한 김 회장은 드디어 2014년 35년에 걸친 일생일대의 숙원사업을 이루게 된다. 서울 1곳과 제주 4곳에 사립미술관 5곳을 한꺼번에 열게 된 것이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서울은 지난 9월 1일, 제주 3곳은 지난 10월 1일 그랜드 오픈했다. 내년 1월에는 동문 쪽에 1곳의 뮤지엄을 추가로 오픈한다.

스스로 “내겐 촉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돈 버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던 김 회장은 미술품 뿐만 아니라 미술관 부지를 매입하는 데에도 천부적인 사업가 기질을 발휘했다.

아라리오뮤지엄 서울은 재정난을 겪던 공간건축사사무소가 내놓은 ‘공간’ 사옥을 김 회장이 현금 150억원을 주고 매입해 9개월에 걸쳐 뮤지엄으로 리모델링했다. 제주 3곳 역시 옛 제주탑동시네마와 탑동바이크샵, 동문모텔 건물 등을 매입해 미술관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특히 탑동시네마는 명필름 소유의 건물이 채권단으로 넘어간 이후 김 회장이 19억원에 매입했다. 그리고 매입가의 3배 가까운 돈을 들여 수리를 마쳤다.

이 뿐만이 아니다. 김 회장은 최근 2~3년동안 제주 탑동과 동문, 성산에 13개가 넘는 건물들을 잇달아 사들였다. 뮤지엄이 들어선 곳 인근 건물 대여섯 곳을 모조리 사들여 그 일대에서 카페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식으로 소위 ‘문화복합단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타고난 ‘촉’을 세워 부동산을 사들이듯, 김 회장은 한번 꽂힌 미술품은 돈이 얼마가 들어가도 반드시 손에 넣었다. 아라리오 관계자들이 “회장님, 10%만 디스카운트 받아도 10만불을 아낍니다”라며 만류해도 그에게 에누리란 없었다. 세계적인 컬렉터들이 탐내는 거장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핫한 신진작가들의 작품까지 김 회장의 컬렉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김 회장은 미국의 유명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 명단에 7년째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 작가의 한 두 작품이 아니라 전시에 출품된 작품을 모조리 사버리는 컬렉션 방식 탓에 독일의 한 회화 작가는 그를 ‘강박적인(Obsessive) 컬렉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김 회장은 ‘고고한’ 미술계 주류로부터 ‘예술을 모르는 졸부’, ‘싹쓸이 컬렉터’라는 비아냥도 들어야만 했다. 

‘공간’ 사옥을 탈바꿈 시킨 서울 아라리오뮤지엄(왼쪽)과 옛 탑동시네마 건물을 개조한 제주 뮤지엄 건물 외관. [사진제공=아라리오]

▶씨킴(C. Kim), 세상을 비웃다=‘유서깊은’ 공간 사옥을 개조한 사립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오픈 이후 미술계 일부의 따가운 시선에 마음 고생을 컸던 탓일까. 최근 제주 아라리오뮤지엄에서 만난 김 회장은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목청껏 불렀다. 제주 뮤지엄에서만큼은 “나 하고 싶은대로 다 했다”는 그의 말처럼 ‘김창일 컬렉션’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준 후련함이 묻어나는 듯 했다.

특히 탑동시네마 건물을 리모델링한 뮤지엄에는 그 스케일만으로도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는 작품들이 빼곡하다. 인도 수보드 굽타, 영국 제이크ㆍ디노스 채프만 형제, 중국 장환(Zhang Huan) 등의 높이와 길이가 수미터가 넘는 대형 설치 작품들이 각 층마다 자리잡고 있다. 미술품 컬렉션에 들이는 공 만큼이나 수장고(천안 목촌에 위치)에서 컬렉션을 보관하고 유지하는 데 애쓴 ‘슈퍼 컬렉터’의 세심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거장들의 작품 사이에는 ‘씨킴’이라는 이름의 작가 작품도 배치돼 있다. 씨킴은 현대미술가를 자처한 김 회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씨킴은 1990년대 후반 40대의 늦은 나이에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작품 값 조차 형성되지 않은 ‘신진 작가’ 씨킴의 작품이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만든 것을 놓고 미술계 일부 인사들은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비웃음도 만만치 않다.

이제는 한국의 ‘찰스 사치(영국 사치갤러리의 오너이자 슈퍼컬렉터)’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슈퍼컬렉터로서의 입지를 다진 김 회장은 왜 칠순을 앞둔 나이에도 씨킴을 버리지 못할까.

그가 그의 작품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펼쳐보였던, 문신처럼 가슴에 새긴 단 한 문장 때문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

제주=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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