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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압받는 이슬람권 트랜스젠더 “생지옥”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 말레이시아에 사는 아리아나(30ㆍ가명)는 생물학적으론 남성이지만 스스로를 여성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트랜스젠더’다. 붉은빛이 도는 긴 갈색머리와 짙은 화장을 한 그는 영락없는 여성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6월의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온 아리아나는 끔찍한 경험을 해야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경찰이 그를 ‘크로스 드레싱’(이성(異性)의 복장을 입는 것) 혐의로 체포했기 때문이다. 몇시간 동안 결박된 상태로 취조를 받은 그는 결국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을 문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말레이에서 트랜스젠더를 보기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이웃 태국에 비하면 이들이 받는 대우는 ‘천지 차이’다. 불교국가 태국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관용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 반면, 이슬람교가 국교인 말레이는 시간이 갈수록 성 소수자에 대해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있어서라고 29일(현지시간) AFP 통신이 분석했다.

말레이시아의 트랜스젠더들은 사회뿐 아니라 국가로부터 일상화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자료=휴먼라이츠워치]

실제 온건 이슬람 성향이었던 말레이는 이슬람 율법해석(파트와)을 내리는 최고 종교기관인 파트와위원회(NFC)가 성전환 수술을 ‘비이슬람적’이라며 금지한 1982년 이래 빠르게 보수화되고 있다. 말레이 연방법에 따르면 크로스 드레싱은 3년의 징역형과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동성애 행위는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돼 최고 20년형이 선고된다. 해마다 열리던 동성애 축제도 2011년 금지됐다. 자칭 ‘온건파’라는 나지브 라자크 총리도 성 소수자들을 ‘비정상’이라고 부르며 이들을 억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말레이 사회에선 트랜스젠더에 대한 배척과 차별이 일상화되고 있다. 취업시 불이익을 받거나 공공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기 일쑤다. 성전환 수술을 하더라도 법적으로 개명을 하거나 성 전환 사실을 인정받을 수 없어 행정적 문제도 자주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25일 발표된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보고서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들은 공권력에 의한 체포, 폭행, 성폭력에까지 노출돼있다.

지금은 트랜스젠더를 위한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니샤 아유브도 이 같은 공권력의 피해자다. 아유브는 지난 2000년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체포돼 감옥에 수감됐다. 당시 한 간수는 그를 남성 재소자들이 있는 감방마다 끌고가 강제로 가슴을 보여줬다. 이후 그는 재소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악몽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설사 형사 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트랜스젠더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우울증이나 약물ㆍ알코올 중독에 걸리거나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내리는 이들도 많다.

또 많은 수의 트랜스젠더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매춘부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비위생적 환경에서 이뤄지는 성매매 때문에 성병에 걸릴 위험도 크다.

2011년 성전환 수술을 한 뒤 먹고 살기 위해 성매매를 했었다는 아비나야 자야라만은 그때의 생활이 “지옥과 같았다”면서 “우리 트랜스젠더들은 인간이 아니라 범죄자처럼 취급받으며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sparkli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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