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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억50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경매의 ‘마술’에 홀리다
-제 133회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 현장 가보니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13억5천, 현재 14억에 기회가 있습니다. 14억 하시겠습니까? 세 번 호가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13억5천, 13억5천, 13억5천 낙찰입니다. ○○번 고객님께 13억5천만원에 낙찰됐습니다. (박수)”

제 133회 서울옥션 경매가 열렸던 평창동 서울옥션스페이스. 이날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백자청화육각향로(조선시대)’가 낙찰되는 순간 좌중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방금 전 ‘백자청화진사운룡문호(조선시대)’를 2500만원(수수료를 제외한 현장 낙찰가)에 낙찰받은 젊은 여성이 이번 경매 최고가 작품까지 손에 넣는 순간이었다. 

서울옥션 평창동 본사에서 펼쳐졌던 제 133회 미술품 경매 현장. 경매장의 ‘절대 권력’은 경매사다. 숨 쉴틈없이 가격을 부르고 응찰을 받으며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현장을 휘두른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경매에 참석한 인사들은 추정가를 훌쩍 뛰어 넘은 작품과 그 작품을 손에 쥔 자에 대해 경이와 부러움을 동시에 보냈다. 까만 정장을 입고 와이어리스를 낀 이 여성은 경매가 진행되는 3시간 내내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며 응찰에 임했다. 경매 전반부 1시간 반 가량 진행됐던 근ㆍ현대미술 파트에서부터 이미 권옥연, 도상봉, 박수근의 작품을 싹쓸이하며 눈길을 끌기 시작했던 그 여인이었다. 그녀는 이번 경매의 또 다른 화제작이었던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7호 ‘오공신회맹축(1456년작)’까지 3억1000만원에 최종 낙찰받고서야 유유히 자리를 떴다.

이 ‘와이어리스 여인’은 어느 회장님이 보냈을까.

전화 응찰을 받는 경매회사 직원들의 모습.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경매사가 펼치는 3시간짜리 마술쇼=“오늘 경매 시작가격은 2억3천만원부터 천만원씩 호가합니다. 2억3천만원.”

“서면(경매전 서면으로 미리 가격을 써낸 응찰자) 2억3천.”

“2억4천 나왔구요, 2억5천만원에 여쭙니다.”

“서면 2억5천.”

“2억6천이구요. 2억7천 나왔습니다. 2억8천 받았구요. 2억9천 나왔습니다…. 3억1천, 3억2천에 기회가 있습니다. 답변 기다리고 있습니다. 3억1천, 현장응찰 최고…. 드릴까요? 3억1천…. (정적이 흐르고) 3억1천! ○○번 고객님께 낙찰입니다.”

13억5000만원으로 낙찰 최고가를 기록한 조선시대 백자청화육각향로. [사진제공=서울옥션]

오공신회맹축이 새 주인을 찾는 순간이다.

미술품 경매장의 ‘절대 권력’은 경매사다. 가격을 부르고 응찰을 받으며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현장을 휘두른다. 숨쉴 틈없이 속도감있게 낙찰을 진행하는 경매사는 열띤 경합이 펼쳐질 때에는 시간을 조금 두기도 한다. 미소를 머금은 채 “이 작품 팔립니다” 혹은 “(이 가격으로) 한번 더 고민해주시겠습니까”라는 말로 응찰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이다.

시작가가 9억원으로 가장 높았던 백자청화육각향로는 무려 5000만원 단위로 호가를 이어갔다. 호가와 응찰이 맞붙는 1초 남짓의 시간 동안 서민들의 전셋집 한 채 값이 왔다갔다 하는 셈이다. 가격이 높아질수록 경매사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좌중은 더욱 고요해진다. 경매가 진행되는 3시간동안 사람들은 작품에 홀리고 경매사의 목소리에 홀리고 돈에 홀린다.

▶뜨거웠던 고미술 경매 열기=추정가가 100억원에 달했던 이번 서울옥션 가을 경매의 판매총액은 총 83억2400만원(낙찰률 72%)으로, 지난 2010년 제 117회 경매(낙찰총액 91억원)이후 4년만에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화제를 모았던 서울시 유형 문화재 제 199호 ‘혼천의(조선 후기)’는 유찰됐지만 오공신회맹축이 3억1000만원에, 유형문화재 제 185호 ‘아미타후불도(1889년작ㆍ작자미상)’가 3600만원에 각각 낙찰되면서 유형문화재 3점 중 2점이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이번 경매에서는 불화, 도자기, 고서화 등 고미술의 경매 열기가 뜨거웠다.

운보 김기창과 신정희의 ‘도자화(1980년작)’가 880만원, 이인문의 ‘산수인물도’가 320만원, 이당 김은호의 ‘미인도’가 1350만원, 작자미상의 ‘민화경작도’가 9000만원에 낙찰되는 등 현장과 전화 응찰이 뜨거운 경합 끝에 추정가 최고 금액을 훌쩍 뛰어넘는 낙찰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민화경작도는 이날 최고 경합을 이끌어냈다.

근ㆍ현대미술 파트에서는 폴 고갱의 영향을 받은 서양화가 권옥연의 향토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유화 ‘여인(3600만원)’, 화려한 오방색이 돋보이는 오승윤의 아크릴화 무제 작품(880만원) 등이 경합을 이끌어냈다. 특히 이우환의 ‘점으로부터(7억315만원)’는 이날 근ㆍ현대 경매 판매가 최고를 기록하며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작품값 비싼 작가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도상봉의 ‘라일락(2억4000만원)’, 박수근의 ‘노상(4억4000만원)’도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고미술 파트에서 뜨거운 경합을 펼쳤던 오공신회맹축과 아미타후불도. [사진제공=서울옥션]

한국 단색화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최근의 경향을 반영한 듯 이번 경매에서도 이우환을 비롯한 윤형근, 박서보, 하종현, 전광영 등 1970년대 한국 단색화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쏟아졌다. 이우환의 작품 1점과 윤형근의 작품 2점은 한 명의 응찰자가 모두 가져갔다.

이 밖에 다른 응찰자들도 경매 프리뷰 전시를 통해 미리 점찍어놓은 작품 서너점 이상을 한꺼번에 챙겨가며 눈길을 끌었다. 고미술 파트가 시작되면서부터 객석에 자리를 잡은 백발의 노신사는 몽인 정학교의 ‘괴석영지도’, 기곡 오명현의 ‘산수도’, 송석재 이수덕의 ‘산수도’를 모두 낙찰받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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