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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년범들에 애정갖되, 질책과 훈계는 매섭게”
쉼터 비행청소년들의 ‘따뜻한 멘토’ 오용규 창원지법 소년부 부장판사…“학교폭력 초등학생까지 법정 서는 현실 안타깝다”
“법정에서 보는 아이들은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데 ‘쉼터’에 있는 아이들은 보통의 아이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또래들끼리 장난도 치고 즐겁게 지내지요. 법정에서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어떤 때는 그 아이들인지를 몰라볼 정도입니다. 정서적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지요”

창원지법이 만든 청소년 ‘쉼터’에 머무는 소년범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오용규 창원지법 소년부 부장판사(41ㆍ사법연수원28기)의 모습은 법정에서와는 사뭇 달랐다.

전국에서 소년부 재판을 맡고 있는 판사는 대략 24명. 그 중 한 명인 오 판사의 임무는 잘못한 아이들을 어떻게 처벌할 지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법정 밖에서도 아이들과 자주 만난다. 그들이 자주 접해보지 못했을 만한 연주회, 축구 경기장에서 멘토로서 그들과 함께 한다. 그런 활동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같이 노는 데 힘들 게 뭐가 있나”고 반문한다.

청소년 쉼터는 법원이 정한 대리인들이 소년범들을 돌봐 주며 사회 적응을 돕는 곳이다. 창원지법 소년부는 국내 최초로 법원 예산을 쪼개 2010년 10월 쉼터를 만들었다. 민ㆍ형사 사건을 두루 맡고 사법연수원 교수, 공보관까지 거쳐 온 오 판사지만 이 수많은 경험 중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현재 그가 있는 곳에서 함께 하는 쉼터 소년들과의 만남이다. 오 판사에게 재판을 받고도 다시 그를 찾아와 그의 ‘팬’을 자처하는 아이들도 수십 명에 이른다. 최근 학교폭력의 가해자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 판사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오용규 창원지법 소년부 부장판사. 누구보다 법정에선 냉철하지만, 법정 밖에서는 넉넉한 웃음으로 청소년 멘토로 살아가는 이다. 그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자존감이 낮아져 소년범들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대신 아이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오 판사에게 재판을 받고도 그를 찾아와 팬을 자처하는 청소년들이 많은 이유다. 오 판사가 사는 법은 뭘까.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소년범에 대한 관심, 이혼 소송 중 상처받는 눈물 봤죠

오 판사가 소년범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데에는 아버지의 덕이 컸다. 학창 시절 학업에 충실했던 오 판사는 소위 말하는 ‘문제아’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연히 그들과 접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동네에서 돈을 뺏는 형들을 가끔 보며 ‘무섭다’고만 생각했지 이해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업계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던 그의 아버지는 달랐다. 학생들 문제로 경찰서를 오가기도 여러 번. 그의 아버지는 방황하는 아이 한 명에게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그는 기억한다.

“제가 살았던 곳 바로 근처에 싸움도 많이 하고 사고도 많이 치고 다니는 학생이 있었어요. 하루는 그 학생 어머니께서 굉장히 힘들어 하시면서 저희 어머니께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버지께서 다른 공고에 다니던 그 아이를 제적 직전에 아버지 학교로 데려 오셨어요. 담임은 맡지 못하셨지만 등하굣길을 함께 가기도 하고 집으로 데리고 오시기도 하고 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도 많이 노력해 주셔서 아이가 점점 달라지더니 지금은 공무원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오 판사의 어머니도 그가 현재의 길을 가는 데에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는 “어머니께서는 늘 공익을 위한 일을 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신 분이었어요”라며 “제가 판사의 길을 걷고 그 안에서 방향성을 찾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셨죠”라고 했다.

이런 그가 소년범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수원지방법원에서 가사재판을 맡았던 경험 때문이었다. 오 판사는 예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이혼 가정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혼 후 아버지 쪽에 맡겨진 아이들은 방치되거나 할머니 손에 자라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또 이것을 본 어머니가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요구하면서 공방이 계속되는 경우도 많았다. 오 판사는 “죄 없는 아이들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왔다 갔다 하다가 상처를 많이 받더라. 소송 당사자들보다 그 아이들이 받는 상처에 눈길이 갔다”고 말했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해 그는 특히 우려를 표시했다.

오 판사는 “최근 학교 폭력 사건을 보면 가해자는 상당히 다수고 피해자는 성격이 소극적인 소수자로 상당히 저연령화 되어가고 있고 초등학생들도 많이 법정에 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요. 예전에는 치고 받고 싸우는 것도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은 사회가 바뀌었고 흉악범도 늘었죠. 무엇보다 학교 폭력을 보면 가해자 부모들이 반성을 하지 않아요. 가해자와 학교의 입장과 피해자, 그리고 법정에서 생각하는 입장들의 간극이 굉장히 크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요

그 중에서도 그가 생각하는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은 소년범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유난히 낮은 자존감이다.

“보호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낮은 자존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정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문제 소년으로 낙인 찍혀 버리니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회에서도 문제아로 취급받게 되죠. 자연히 자존감이 떨어지게 되고 쉽게 비행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 판사가 멘토로서 가장 도와주고 싶은 부분도 아이들의 자존감을 끌어 올리는 일이다.

“보호소년들의 장점을 보고자 많이 노력하고 그 부분을 칭찬하고 북돋워주려고 합니다. 한 때 비행을 저지르기는 하였지만 기본 심성은 착하고 여러 장점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런 점을 스스로 느끼도록 해주려고 애씁니다. 사실 이 아이들에게는 늘 지켜봐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오 판사는 정말로 아이들을 위한다면 단호해져야 하는 순간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통감한다고 말한다. 오 판사가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믿고 쉼터에 보낸 아이들이 다시 범죄에 손을 대 법정에 서게 될 때다. 한 번은 쉼터에 보낸 아이가 이탈해 사고를 쳐 구속이 됐던 경우가 있었다. 소년원에 보낼 것을 잘못했다고 후회했다.

“아이들에게 정말 올바른 선택을 해주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오히려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독이 될 수 있거든요. 아이들에게 애정은 갖되 단호하고 엄격해야 할 때는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철학 때문에 법정에 선 아이들에게 건네는 그의 말은 부드러움보다는 질책과 훈계에 가깝다.

“보통 17~18살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한테 몇 년 더 살 것 같으냐는 질문을 해요. 70년 정도 더 살 것 같다 뭐 그렇게 대답을 많이 하는데 계속 이렇게 살면 너는 평생을 이렇게 살 것이다, 누구의 인생도 아니고 네 인생인데 정말 계속 이렇게 살 것이냐고 물어요. 보통 그러면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죠.”

그는 법정에서 엄격히 마주한 아이들이 쉼터에 가서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 아이는 쉼터로 보냈더니 그렇게 좋아하더라. 얼굴이 눈에 띄게 확 밝아지고. 아이들이랑 어울려 노는 모습 보면서 그 아이한테는 쉼터가 딱 맞는 맞춤형 처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뿌듯했다”고 회고했다.

책임감? 아무리 무거워도 지나치지 않아요

벌써 수많은 소년범 아이들을 만난 오 판사지만 여전히 어떤 아이를 쉼터에 보낼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 판사는 쉼터에 가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결코 약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부모가 보호할 능력은 없지만 어른들이 잘 관리해주면 바르게 자랄 수 있어 보이는 아이들을 보낸다. 비교적 자유로운 쉼터에서 이탈해 버릴 것 같다 싶은 아이들은 소년원에 보내는 것이 더 적합하다. 오 판사는 “1호 처분을 내리면 쉼터에 보낼 수 있고 10호 처분을 내리면 소년원에 가게 되는데 10호 처분 내려지면 아이들 인상이 바로 찡그려지더라”고 했다.

이렇듯 아이들의 신병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책임감이 만만치는 않다. 이미 15년 가까이 법복을 입고 있지만 여전히 판사라는 직업 자체가 주는 책임감과 부담감도 상당하다.

“판결에 대한 책임감은 늘 무겁게 다가옵니다. 혹시라도 문제될까 사람도 마음대로 못 만납니다. 다가오는 분들 중에는 청탁과 같이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접근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당연히 거절하지만 그렇게 해도 만났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한테 가까운 인맥처럼 이야기해서 악용할까봐 하는 점도 걱정이 돼요.”

여러모로 조심스러운 직업이지만 그도 직접 이 자리에 앉기 전에는 그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다. 오 판사는 “솔직히 이야기하면 멋져 보였고,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점,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같은 것이 판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였다”고 했다.

쉼터의 확대…예산 지원이 아쉽다

현재 청소년 쉼터는 이를 처음으로 개설한 창원 지역에는 총 7곳이 개설돼 있지만 아직까지 전국적으로는 수가 매우 적다.

“서울에도 어게인이라는 쉼터가 생겼는데 창원 지역의 쉼터 중 하나인 샬롬에 찾아가기도 하고 자문도 구하셨어요. 전국적으로 확대돼 나가는 것이 정말 좋지만 사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같은 대상에 대해서도 운영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서 노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천종호 판사님이 기틀을 닦고 마련하신 창원의 시스템은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아이들 재범률도 굉장히 낮습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 중이 예산”이라고 말했다.

“아이들 식사비와 시설관리비용, 부대비용이 많이 드는데 현재 비용으로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아이들이 아프면 치료비도 필요하고요. 보호자가 비용을 지불해 주면 좋겠지만 보호자가 없는 경우도 많고 보호자 중에서 보호를 포기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면 센터에서 부담할 수밖에 없죠”

교육과 관련된 부분에도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학교가 유예되거나 한 아이들은 검정고시를 준비해야 되는데 그것을 위해서도 예산이 필요합니다. 현재는 아이들이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는 상황이니까요. 또 직업 교육도 굉장히 필요한 부분 중에 하나죠.”

하지만 비용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제도적인 지원이다. 그는 “단편적인 부분만 가지고 만드는 제도가 아닌 다각적인 면을 조사하고 판단해 청소년 쉼터를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부모처럼 돌보아 줄 쉼터의 장을 찾는 일도 쉽지는 않다.

“현재는 직접 적합한 분을 물색하는 방법 뿐입니다. 소개를 받거나 알음알음 찾는데 다 여러 번 만나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법원이 생각하는 쉼터와 그 분이 생각하시는 쉼터의 모습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 하거든요.”

쉼터 운영의 또 다른 복병은 주위의 차가운 시선이다. 그는 “몇 번씩 이사를 다닌 쉼터도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신뢰를 얻을 때까지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틈틈이 아이들을 보면서 쌓여 있는 재판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남는 시간이 많지만 그래도 한 달에 두세번씩은 가족들 얼굴을 보러 서울로 올라온다. 보고 싶은 자녀들을 자주 만나지는 못해 안타깝지만 아빠가 그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의 꿈을 물어봤더니, 소년범 아이들이 ‘꿈’을 갖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이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대답을 하지 못하더라고요. 쉼터의 아이들에게도 꿈이라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특히 저 같은 법관들부터 아이들의 생각을 더 많이 공유하고 알아나가는 노력을 해야겠지요”

오용규 판사가 걸어온 길

오용규 판사는 1973년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의 덕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99년 사법연수원(28기)을 수료하고 1999년 육군법무관을 거쳐 대구지법 판사, 경주지원 판사, 수원지법 판사 등을 거쳤다. 수원지법에서 머무르던 중 1년 간 중국정법대학에서 연수과정을 밟았다. 당시 중화인민공화국 상속법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이후 2010년 사법연수원 기획교수, 2012년 서울고등법원 공보관 등을 거쳐 올해 초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부장판사로 부임해 소년범들의 재판을 맡고 있다.

이수민 기자/smstor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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