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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샵메일’ 판촉원 된 예비군 동대장? 효율성 의심되는 국방부 정책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지난달 올해의 마지막 향방작계훈련을 받고자 주소지의 동사무소를 찾았습니다. 여느 때처럼 총기와 철모, 탄띠를 나눠 받고 얌전히 동사무소 한켠에 마련된 강당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긋하게 나이가 드신 동대장은 딴청을 피우는 예비군들을 능숙하게 휘어잡으시더군요. 능숙한 말솜씨로 이어지는 담당 작전지역의 동선과 경계 주둔지 설명은 그야말로 ‘청산유수’였습니다. 교육 중간 중간 절묘하게 스며든 농담은 예비군들의 눈을 절로 교육 자료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토록 유창하던 예비군 동대장의 입이 잠시 멈춘 건 실내 교육이 끝나고 야외 훈련을 나가기 전 주어진 막간의 시간, 그때였습니다. 시종일관 여유 있는 모습으로 이른바 ‘짬밥’을 과시하던 동대장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쭈뼛거렸습니다. 이윽고 그가 예비군들의 눈앞에 펼쳐 꺼내놓은 것은 다름 아닌 ‘샵메일 가입방법 안내화면’이었습니다. 곧 다시 시작된 동대장의 설명에서 그에게 잠시동안 보였던 망설임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에…저도 나이가 많이 들어서 스마트폰을 잘 못 다루기는 하는데, 성심성의껏 설명해 드릴 테니 한번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서 따라해 보시길 바랍니다. 부탁 좀 할게요. 우선 스마트폰에 있는 애플리케이션(앱) 장터에 들어가서 ‘샵메일’을 검색해 보세요. 그러면 앱 하나가 검색될 겁니다. 한국정보인증…뭐 그렇게 된 것이 있지 않나요? 일단 그것을 좀 내려받아 주세요. 좀 부탁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면…”

동대장이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샵메일 가입 권유’였습니다. 그는 예비군들에게 샵메일 앱을 내려받는 방법부터 공인인증서나 전화번호를 통한 개인인증, 아이디 등록절차까지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부탁’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사용했습니다. “아이폰은 안된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그는 앱 설치를 망설이는 예비군들 앞에서 “상부의 지시로 예비군 샵메일 가입자를 확대해야 한다”며 “가입을 강제하지 말고 원하는 예비군을 대상으로만 권유하되, 가입자는 대폭 늘리라는 지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든 상황이니 도움을 부탁한다. 절대 강제는 아니다. 하지만 한번 이 자리에서 가입 시도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모순된 부탁을 거듭했습니다.

그 모순성 앞에서 동대장은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샵메일 없이도 이미 개인 이메일 등을 통해 예비군 훈련 통지를 아무 탈 없이 수년간 받아온 예비군들입니다. 그런데 정체도 잘 알 수 없는, 실행조차 한참을 ‘버벅’ 거리는 앱을 내려받아 무작정 가입하라니 말을 들을리 만무합니다. 아버지뻘인 동대장의 측은한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샵메일에 가입한 몇 명을 빼고는 대다수의 예비군이 딴청을 피우며 결국 이 앱을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체념한 듯한 동대장은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라도 꼭 다시 한번 가입을 해보시기 바란다. 정부 정책으로 만들어진 이메일이기 때문에, 앞으로 예비군 훈련 통지서도 샵메일로 보낼 예정”이라는 말로 ‘판촉행사(?)’를 끝냈습니다.

샵메일은 일반 이메일과 달리 본인 인증이 완료된 사람이나 기관끼리 주고받는 이른바 ‘온라인 등기우편’입니다. 기존 이메일과는 다르게 반드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후에야 발급받을 수 있으며, 누가ㆍ누구에게ㆍ언제 보냈는지ㆍ언제 확인했는지 등의 유통정보가 저장됩니다. 지난 2012년 지식경제부가 전자거래기본법을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으로 개정한 뒤 만든 것으로, 국방부는 지난해 7월부터 예비군 훈련 통지서를 샵메일로 전달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문제는 효율성과 강제성입니다. 이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는 ‘예비군 동대에서 샵메일 가입해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예비군 훈련을 갔는데 동대장이 샵메일 가입을 강요했다’ 는 등의 글이 오르내린 지 오래입니다. 국방부는 “예비군 본인의사에 의해 가입을 결정하도록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하지만 상급부대가 각 동대별 샵메일 가입현황을 관리하는 마당에, 일선 동대가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확보된 가입자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또 얼마나 자주 샵메일을 이용할까요? ‘일시적인 가입자 확보, 덩치 불리기를 통한 정부 정책 당위성 입증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실제 지난 6월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주최한 ‘샵메일 현황 및 개선방향’ 공개토론회에서는 “공공기관에서 서류 발송 시 샵메일을 권장하고 있는 점은 실질적 강제라는 비판이며, 예비군 훈련소에서 샵메일 가입 시 조기퇴소를 실시하는 것도 문제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김기창 고려대 교수는 “공권력을 동원해 샵메일을 무조건 써야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강제 아닌 시장 자율에 두고 사용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이 같은 잡무에 시간을 뺏기고, 동대장의 위상이 떨어져서야 예비군 훈련의 성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비군은 훈련시간 동안은 다시 ‘국가에 소속된 몸’입니다. 동대장은 예비군들의 엄연한 지휘관입니다. 그 동대장이 판촉원 같은 모양새로 예비군들에게 샵메일 가입 권유를 하다보면 당연히 통솔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방부의 적절한 조치와 관리가 절실합니다. 일선 예비군 동대가 샵메일 가입자 확대 압박을 받지 않고 진짜 원하는 이들에게만 가입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관리 시스템이, 아울러 하다못해 막무가내식 가입방법 설명이 아닌 제도의 의미와 장ㆍ단점을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자료의 보급과 교육이 있어야만, 제가 경험한 ‘웃지 못할 상황’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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