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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문화 샤넬전
“우리는 그곳에 버려졌다. 수녀들에게 돌보라고 맡겨진 것이다. 수녀들은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주거나 체념하고 기도하라고 격려하는 말을 건네는 것 밖에 더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뭇여성들의 우상, 샤넬은 말년에 이렇게 술회했다. 1895년 가브리엘 샤넬은 외딴 시골 마을 오바진 수도원의 고아원에 버려진다.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행상인이었던 아버지는 세 아이를 이곳에 남기고 떠난다. 샤넬의 나이 12살이었다. 샤넬은 고아원을 운영하던 성모성심회 수녀들에게서 바느질을 배워 주문받은 옷가지들을 만들었다. 오바진 수도원은 샤넬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 곳이지만 샤넬 창조작업의 원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샤넬의 컬러인 블랙앤 화이트는 고아들이 입었던 옷과 수녀들의 의상에서 따온 것이다. 말끔한 하얀 셔츠와 굵게 주름잡힌 검은 색 치마는 고아들의 옷이었다. 수녀들의 하얀 스탠드 칼라 모양의 가슴받이와 검은색 원피스를 차용한 리틀 블랙 드레스는 1961년 오뜨 꾸뛰르에서 까뜨린느 드뇌브가 입어 눈길을 끌었다. 오바딘 수도원 바닥의 별 문양도 한동안 샤넬의 원피스를 장식했고, 수도원의 12세기 스테인드글라스는 샤넬의 모노그램인 더블 C에 영감을 주었다. 뿐만아니라 샤넬은 수도원의 모습을 직접 자신의 집에 구현했다. 샤넬은 라 파우자 별장의 입구와 거실, 문과 창, 회랑과 벽체를 수도원의 건축양식으로 꾸몄다. 샤넬은 특히 홀에 커다란 석조 층계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건축가에게 주문했다. 어린 샤넬에게 수도원의 넓고 단단한 계단은 꿈과 욕망의 사다리였을 것이다. 그녀는 수도원을 나와 물랭에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야망을 불태웠다. 지난 주말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문화 샤넬전’이 열리고 있다. 샤넬의 화려한 삶과 창작물의 이면에 자꾸 눈길이 간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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