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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대추ㆍ밤ㆍ감’ 의 문화적 해석
권대봉 고려대 교수


한민족의 명절인 추석 준비에 바쁜 한 주간이다. 추석에 조상을 기리는 제사는 한국의 문화풍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모친의 제사를 거부하여 순교했던 윤지충 등 순교자 124위에 대한 시복 미사를 집전하였다.

윤지충은 모친이 돌아가시자 당시 가톨릭 교리를 따르려고 위패를 불태우며 제사를 거부한 이유로 국문을 받았다. 그는 위패를 불태운 행위를 자신의 과오로 인정하지 않았고, 천주교 교리에 따른 정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가 사형을 당했다. 그는 1791년에 동서 문화충돌의 희생자로 순교자가 되었다가 2014년에 교황에 의해 복자로 부활했다.

천주교가 처음 한국에 전해질 당시에 제사를 조상신 숭배라고 판단했던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 입장을 바꾸어, 제사를 ‘효(孝)의 한국적 표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지금은 제사를 허용한다. 제사상에는 ‘대추ㆍ밤ㆍ감’을 반드시 올린다. 혹자는 대추는 씨가 하나이므로 왕을 상징하고, 밤은 한 송이가 세 톨이라 삼정승을 상징하며, 감은 씨가 여섯 개이므로 육판서를 상징하므로 제사상에 올린다고 해석한다. 조상을 기리는 효의 표현인 의식에 ‘왕ㆍ삼정승ㆍ육판서’를 각각 상징하는 과일을 제물로 올린다고 해석하는 것은 다분히 카타르시스(catharsis)적 발상이다.

한편으로 이는 위정자들에게 주는 경계의 메시지일 수 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뒤에 왕조시대에 왕을 상징하는 대추, 왕의 명을 받아 국정을 집행하는 삼정승(三政丞)을 상징하는 밤, 그리고 육판서(六判書)를 상징하는 감을 씹어 먹는 백성들의 심정을 위정자들이 헤아려야한다는 경계이다.

위정자 자신들이나 붕당(朋黨)을 위한 정치가 아닌 백성을 위한 정치를 요구하는 정치문화적 해석도 가능하다.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 한국의 제사를 조상에 대한 ‘효 의식’으로 재해석한 것은 동서 문화의 화해이며 평화를 위한 실천적 행위이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돌아가신 조상으로 하여금 제물을 흠향케 하기 보다는 제물을 통해 자손을 교육하기 위함이다. 대추는 제물로 올리는 필수적인 삼실과의 하나이지만 혼인 예식 중 폐백 때 어른들이 신랑신부에게 덕담과 함께 주는 과일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엔, 대추는 꽃을 피우면 반드시 열매를 맺으므로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대추는 비바람이 몰아칠수록 더 잘 영글기에 세상풍파를 대추처럼 꿋꿋하게 버텨나가면 비로소 좋은 삶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콩 심으면 콩난다’는 법칙이 통하지 않는 것이 감이다. 감 씨앗을 심으면 감을 얻을 수 없고 고욤을 얻는다. 감의 씨앗으로 탄생된 고욤나무를 감나무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고욤나무가 밑동이 잘려지는 아픔을 견뎌야 한다. 밑동을 잘라낸 고욤나무에 튼실한 감나무의 가지를 꺽어서 접을 붙여야 비로소 감나무로 변화한다. 자식을 낳아서 그냥 두면 고욤나무처럼 되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 교육을 통해 감나무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씨앗으로부터 떡잎이 먼저 솟아나는 다른 과일나무들에 비해 뿌리부터 생기는 것이 밤이다. 뿌리가 나고 줄기가 나야 잎이 나는 것이 밤이다. 뿌리가 튼튼하게 자리를 잡아야 줄기가 잘 크므로 자식을 잘 키우려면 부모가 말보다는 행동으로 모범이 되어야 하며, 뿌리 없는 줄기가 없듯이 부모 없는 자식이 있을 수 없으므로 자식은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한다는 의미가 밤에 담겨 있다. 폐백 때 밤을 신랑신부에게 주는 이유도 부모 노릇 잘하고 효도하라는 의미이다.

가정과 기업이 튼튼해져야 나라가 튼튼해진다. 추석을 앞두고 ‘대추·밤·감’의 의미를 부모와 자식들이 곱씹어 보면 가정이 변할 것이고, 사장과 사원이 곱씹어 보면 기업이 변할 것이며,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곱씹어 보면 나라가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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