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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준에서 청년작가까지…한국미술, 중국 藝鄕을 경탄케하다
학고재갤러리, 中 항저우서‘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 한국현대미술展
팝아트 · 영상 등 장르·나이 불문
‘중국의 경주’서 이례적 그룹展
파격 · 도발적 작품 관람객들 눈길
12일엔 상하이서 백남준展 개최



[항저우=김아미 기자] “이러한 색감은 전에 본 적이 없어요. 한국 현대미술은 놀라워요. 중국의 현대미술이 전통에만 치우친 반면 한국은 동양적인 정신을 담고 있으면서도 전통과 현대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으니까요.” (장종완의 작품 ‘Sad Romance’를 본 쉬 원원(Xu Wenwen) 중국 상하이데일리 기자)

백남준(1932~2006), 이우환(78)부터 박지혜(33), 장종완(31)까지 한국의 현대미술이 중국을 ‘경탄’케 했다.

학고재갤러리(회장 우찬규)와 항저우(杭州) 삼상당대미술관(관장 천즈징ㆍ陳子勁)이 8월 29일부터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The Moment, We Awe)’이라는 타이틀로 개최한 한국현대미술전에서다.

인구 800만의 대도시 항저우는 12세기 중국의 문화 예술을 꽃피웠던 남송(南宋ㆍ1127~1279)시대의 수도였다. 쑤저우(蘇州), 양저우(揚州)와 함께 중국 3대 예향주로 불리우는 곳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경주’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 8월 29일 중국 항저우 삼상당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한국현대미술 전시회에서 중국 관람객들이 한국 작가들의 작
품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차이쿼창, 황용핑 등 세계적인 작가들을 배출하기도 한 항저우는 중국 미술계에서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 베이징 중앙미술학원과 함께 중국 미술교육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중국미술학원’이 항저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중국미술학원 미술관과 함께 삼상당대미술관은 항저우 미술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처럼 문화예술의 전통이 뿌리깊은 항저우에서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의 대규모 그룹전이 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한국 현대미술 전시는 상하이 하오아트뮤지엄(Howart Museum)의 관장이자 ‘중국통’ 큐레이터인 윤재갑씨가 기획했다. 지난해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같은 이름으로 한국과 중국 작가 6명의 작품들을 선보였던 전시가 이곳 항저우 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규모가 커졌다. 한국의 현대미술 거장인 백남준과 이우환을 시작으로 김아타(58), 유근택(49), 홍경택(46), 이세현(47), 이용백(48) 등 중견작가는 물론 오윤석(42), 권순관(41), 김기라(40), 박지혜, 장종완 등 청년 작가까지 전세대를 아우르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선보였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회화, 사진, 설치, 영상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맥을 짚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8월 29일 중국 항저우 삼상당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한국현대미술 전시회에서 중국 관람객들이 한국 작가들의 작
품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이우환(78)의 작품 ‘관계항(Relatumㆍ2008)’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돌과 철판을 소재로 한 관계항 설치 작품이 드로잉 작업과 함께 선보였다.

한국 미디어아트의 대표주자 이용백의 설치작품 ‘깨진 거울(Broken Mirrorㆍ2011)도 중국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관객이 거울 앞에 서면 갑자기 굉음을 내며 총알이 날라오고 유리가 깨지는 영상이 반복된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에서 선보이기도 한 작품이다.

표현주의 미술의 강렬함을 팝아트적으로 풀어낸 홍경택의 페인팅은 전시장 한쪽 벽면을 압도적인 비주얼로 채워놓았다. 또 성형수술 전과 후의 모습을 한 몸에 담은 적나라한 누드 사진으로 비판적 시각을 녹여낸 권순관의 사진과, 유리병 속에 편지를 넣어 백령도 바닷가에 띄워보내는 작업을 통해 이념 대립으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 현실을 작가적 성찰로 풀어낸 김기라의 영상 등도 잇달아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 8월 29일 중국 항저우 삼상당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한국현대미술 전시회에서 중국 관람객들이 한국 작가들의 작
품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이처럼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작품들이 보수적인 중국 미술관에서 선보였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의 문화적인 성숙도가 높아졌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현지 미술관계자들은 전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미술작품을 전시하기 위해서는 중국 공안에 신고를 거쳐야 했고 자막도 다 번역해서 검열을 받아야만 했는데, 체제가 안정됨에 따라 검열 수준이 낮아지고 관용의 폭도 넓어졌다는 것이다.

현재 항저우 미술계는 중요한 이벤트들이 잇달아 열리면서 들썩이고 있다. 5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전국미술대전이 항저우 절강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영국의 비디오 작가 로만 시그너(Roman Signer)의 개인전이 중국미술대학 미술관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에서 비디오 작가의 전시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재갑 관장은 “지금이 항저우 미술계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다. 중국 전역의 미술 작가들이 항저우로 몰려오는 이 시점에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린 것이 타이밍이 매우 좋았다”고 평가했다.

한편 학고재갤러리는 오는 12일 상하이에서 백남준 전시회를 개최한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회장은 “백남준 선생이 생전에 상하이와 모스크바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는데 그 중 한가지 유지를 받들게 된 셈”이라고 전시의 의미를 밝혔다. 그는 또 “그룹전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작가가 있다면 개인전 형식 등을 통해 중국에서 전시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중국 작가들의 전시를 여는 등 한국과 중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를 양국에서 연례적으로 개최해 예술 교류를 증진하고 나아가 아시아 현대미술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포석이다.

전시는 9월 28일까지 계속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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