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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힙합씬 3년내 거품 꺼진다”
내년 3집 앨범 준비…힙합 시조새‘ 가리온’
랩 제대로 이해 못한 뮤지션 수두룩
대중들은 금세 식상해하고 등돌려

서로 미워하는 ‘디스’는 문화 될수 없어
그저 흉내내기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


“내 목표는 오직 하나/넘사벽의 랩 실력/허 근데 이거 뭐/어디를 다쳤나봐/제대로 크기전에 성장판이 닫혔나봐/닫힌 입 뿐만아니라/귀도 막혔나봐/짜가들 설쳐대서 판이 전부 바뀌었나봐/거짓과 모순(...)힙합이 힙합이 아니면/힙합이 아니지/근데 힙합이 아닌데/힙합이란건 말이지/바로/사기 구라 미친 거짓/너희 모두 진짜 가짜”(‘거짓 2013’)

힙합 시조새로 불리는 가리온(MC메타, 나찰)의 지난해 데뷔 15주년 기념음반에 실린 곡 ‘거짓 2013’이다. 가짜가 판치는 힙합씬에 대한 통쾌한 펀치 라인이다.

지난 28일 홍대 인근에서 만난 가리온에게 ‘힙합 르네상스’라 불리는 2014년은 어떤지 물었다.

가리온은 지난해부터 한 기획사가 연습실 공간을 내줘서 아마추어 래퍼들이 누구나 와서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있다.입장료도 없고 무료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엄청나게 대중화됐죠. 그런데 걱정도 돼요. 현재 음원차트 상위권에 힙합이 오르고 많은 뮤지션들이 힙합에 유입되고 있는 건 긍정적이지만 과거 힙합퍼라 불렀던, 힙합을 삶으로 즐기고 취미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거품이 꺼졌을 때를 생각해야 되지 않나 생각해요.”(MC메타)

가리온이 걱정하는 건 겉멋 들린 힙합이 득세하면서 힙합의 멋과 맛, 진정성의 훼손이다. 특히 어린 뮤지션들이 그런 게 힙합의 본질인 줄 알고 따라간다는 점이다.

“거짓과 위선, 가면을 벗겨내는 용기있는 랩을 찾아볼 수 없어요. 2000년대에 청춘의 아픔, 고민, 사랑을 노래한 랩이 대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달달한 랩과는 달랐죠. 거친 것 만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 내 안에 이런 면도 있다는 자기 성찰적 측면이 있었거든요. 지금처럼 바깥의 상업적 요구를 따라 만든 거랑 다르죠.”(나찰)

지금 힙합씬은 음악을 통한 자기 구현보다 기회를 잘 잡아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 게임이 돼버렸다고 가리온은 한탄했다. “기획사나 레이블도 어떤 기준 같은게 생겨서 언더그라운드 색깔이란 찾아볼 수 없게 된 게 현실이에요. 일종의 먹고 사는 직업이 돼 버린 거죠.”

옳지 않다고 ’구리다‘고 생각하는 걸 목숨걸고 내뱉는 디스(diss)도 흉내내기나 마케팅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

“디스는 문화가 아니에요. 미워하는게 어떻게 문화에요? 나쁜 짓이지. 문화라는 너울을 씌워 힙합을 묘하게 이미지한 거에요. 그러다 보니 욕을 해도 ‘힙합은 원래 그런 거야’하고 면죄부처럼 돼버렸죠.”(MC메타)

랩의 진정성은 사실 들어보면 바로 안다. 적당히 욕을 섞어 그저 스타일만 흉내내는 건지, 자신의 가면이나 밖의 거짓을 깨트려 보려는 묵직한 울림있는 랩인지는 표가 나게 마련이다. 그런 공감을 일으키며 뭔가 끓어오르게 하는 랩이 없으니 가짜가 판친다는 얘기가 나온다.

가리온의 독설은 이어진다. 그는 지금 잘 나가는 래퍼들은 욕망의 대리자인 ‘검투사’꼴이라고 했다. 승자가 모든 걸 가져가는 승자독식주의에도 일침을 가했다, “발라드 랩은 힙합이 아니다, 그런 괴이한 용어를 쓰지 말고 솔직해지라”고도 주문했다.

힙합이 대세라지만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뮤지션이 클 수 있는 무대 하나 없는 건 아이러니다, 그나마 한 방송의 힙합 서바이벌 예능프로그램이 다다. “뮤지션이 클 수 있는 무대가 없어요. 기획공연 이나 한두 군데 클럽에서 주말 공연 정도죠. 오디션도 보고 뮤지션이 무대에 올라가면서 성장하는 상시 무대가 없는게 문제에요.”

가리온은 한국 힙합의 거품에 대해 속사포 랩처럼 줄줄 읊었다. 이들은 분명 3년내에 거품이 꺼져 위기가 올 것으로 내다봤다. 이유는 간단하다. 랩의 이해도가 부족하고 힙합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뮤지션들이 쓸 수 있는 랩이란 건 바로 동이 나기 마련이고 대중은 금세 식상해하기 때문이다. MC메타는 따라서 지금이 힙합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적기라고 지적했다.

“힙합문화는 디제이와 래퍼, 비보이와 그래피티가 제대로 어울릴 때 가장 멋진 것 같아요. 힙합이 대세라지만 이런 힙합문화와 본질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문화로서의 힙합은 래퍼 뿐만아니라 디제이와 비보이 그래피티가 한데 어울릴 때 제대로 구현되는데 지금은 각각 흩어지고 접점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90년대 한국랩의 형성기를 이끈 주역이자 현역 래퍼로 최연장자인 MC메타의 어깨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지난 주말(8월30,31일) KT&G 상상마당 춘천과 공동으로 기획한 힙합 음악여행 ‘힙합스테이’는 그의 오랜 꿈과 힙합씬의 절실한 요구를 구현해본 첫 시도다. 힙합공연과 한국 힙합에 대한 이해를 돕는 강좌, 힙합상영회와 직접 랩을 쓰고 불러보는 힙합아카데미까지 힙합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가리온이 꿈꾸는 무대는 2000년대초, 홍대 주차장 골목에서 디제이 래퍼 비보이 그래피티가 한데 어울려 경합하고 길가던 이들도 신나게 힙합을 즐겼던 ‘비보이 파크’같은 힙합 마당을 만드는 것.

또 다른 꿈은 래퍼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 오디션을 보고 무대에 서고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상시 무대를 만드는 거다.

“98년도 데뷔할 때 마스터플랜이란 공연장이 있었어요. 소규모 클럽이었지만 래퍼들이 상시 힙합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무대였죠. 2001년 여러 사정으로 문을 닫아 아쉬웠죠.”

공학도였던 MC메타와 교사를 꿈꾸는 대학생 나찰은 98년 가리온을 만들면서 우리말 랩을 기치로 내세웠다. 뭔가 촌스럽다고 여겨지던 한국어 랩을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 일본 힙합을 이기는 거다. 가리온은 그런 면에서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금은 레퍼런스가 넘쳐나지만 당시엔 거의 없었어요.” 지금은 한국말로 하는 노래, 랩이 글로벌 인기이니 격제지감을 느낄 만 하다. 대구 사투리 랩도 이들은 시도한 적이 있다.

가리온은 16년동안 정규 앨범을 2장 냈다. 더딘 작업이 오히려 원치 않는 방향으로 휩쓸리지 않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내년에 낼 3집은 새로운 시도를 할 예정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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