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호 서울학연구소장의 끝없는 서울 예찬…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위해 오늘도 달린다
“서울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역사의 층위가 아주 두터운 도시입니다. 자연지형과 한 몸을 이루어 건설된 세계적인 도시이기도 하죠. 이러한 서울의 특성을 가장 잘 담고 있는 한양도성은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단층짜리 붉은색 벽돌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920년대 세워진 옛 경성농전 건물로, 건물 자체가 오래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고 내부로 들어가면 천장을 터 기품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 자리잡고 있는 서울학연구소를 지난 2007년부터 이끌어 오고 있는 송인호(57) 서울학연구소장은 서울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다.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한 서울의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 건축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현대 도시인들의 삶에서 재창조해내는 재미와 지적 희열에 충만해 있다. 최근에는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뛰고 있다. 연구소에서 만난 송 소장은 서울 예찬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언어가 삭막한 거대도시 서울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느낌이었다.
▶지역 연구의 선도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이라는 학문이 전문 학술분야로 이미 자리를 잡고 있고, 이를 중점 연구하는 서울학연구소도 올해로 벌써 창립 21주년을 맞았다.
“서울학연구소는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통합적 연구를 위해 정도 600년을 기념해 1993년 설립됐습니다. 그 이후 1997년에 중국의 베이징학연구소가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도 인천학연구소, 부산학연구소, 경주학연구센터 등 각 지역과 도시의 정체성을 연구하기 위한 연구소들이 많이 생겼어요. 서울학연구소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지역학연구의 선도적인 역할을 한 셈이죠.”
송 소장은 서울학에 대해 서울의 공간과 시간, 사람에 대한 것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각 학문 분야에 매몰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예술, 건축,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융합한 학제적 연구의 모델이라 할 만하다.
“한 장소를 들여다보면 거기에 역사와 문화와 사람들의 삶이 모두 녹아들어가 있죠. 서울학은 서울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는 ‘장소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도 에도학 또는 에도도쿄학이라는 학문이 있어요.”
서울학연구소는 이제 국제적인 지역연구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금은 동아시아 각국의 수도와 주요 도시를 비교ㆍ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역점을 두고 있다. 베이징, 도쿄, 하노이 등 현재의 수도는 물론 난징, 시안, 교토, 평양, 개성 등 과거 수도와 서울을 연구하는 작업으로, 지난해 학술진흥재단의 대학중점연구소사업 평가에서 융복합분야 최우수 연구과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의 매력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기쁨 올해로 8년째 서울학연구소를 이끌어오고 있는 송 소장은 1990년 서울대에서 ‘도시형 한옥의 유형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경제성장과 개발 붐을 타고 한옥을 헐고 다세대주택을 짓는 바람이 불면서 사라져가던 서울 북촌과 서촌, 가회동, 돈암동, 보문동 등의 ‘도시한옥’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그 가치를 환기시킨 논문이었다.
“서울이 중세도시에서 근대도시로 급팽창하던 1930~1970년대 사이에 지어진 근대도시주택유형으로서의 도시한옥을 연구한 거죠. 보통 ‘한옥’ 하면 18~19세기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부분 20세기 전반에 지어졌습니다. 대표적인 가회동 한옥의 경우 1935년 한 주택개발업자가 큰 필지를 사들여 이를 분할하고 표준화한 한옥을 지어 분양한 겁니다. 서울 최초의 주택분양이었죠.”
그가 한옥을 연구하게 된 것은 1985년 가회동 한옥 조사에 참여하면서 시작됐지만, 북촌에 있는 중앙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옥마을을 매일 돌아다녀 이미 친숙해져 있었다. 한옥 연구와 함께 보존 활동에 참여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북촌엔 1960년대 2000여 호의 한옥이 있었지만 2000년엔 1000채 정도로 감소하면서 보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울시도 보호정책을 수립했다. 개발 중심에서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는 정책적 선회가 이루어진 것으로, 송 소장도 정책 입안에 참여했다.
“주민들 일부는 재산권에 피해가 간다면서 낡은 한옥이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반대했지만, 지속적인 설득과 한옥 보수에 3000만 원을 무상지원하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합의를 이루어 한옥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울의 중요한 명소가 됐죠.” 송 소장은 학문적 연구와 사회적 실천을 병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와 이 연구소의 소장은 물론 전세계 역사 기념물과 유적의 보존을 위한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코모스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지정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인 전문가 조직이다.
▶거대도시 서울의 매력은 무엇인가 서울은 좁은 면적에 1000만 명의 인구가 복작대는 거대도시다. 세계 10위권의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경제의 중심지로,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바쁘고 열심히 일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대도시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송 소장은 그것을 두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역사의 층위가 아주 두터운 도시라는 점이다.
“서울은 조선의 수도 이후 600년, 고려 남경까지 포함하면 1000년, 백제 몽촌과 풍납토성까지 올라가면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20세기엔 지구상 다른 도시들이 겪지 못했던 역동성을 경험했죠. 식민도시로서의 어두운 경험과 분단국가 수도로서의 경험, 압축성장과 독재의 시대, 민주화를 이루어낸 도시입니다. 세계 어느 도시보다 치열했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는 자연과 밀접한 도시라는 점이다. 서울은 북한산 능선을 배후로 북악과 낙산, 남산, 인왕산 등 내사산에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 한강이 흐르고 있으며, 그 지세에 따라 도시 형태가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자연을 존중하는 도시라고 송 소장은 설명한다.
“지금은 지형의 변형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애초 자연지형과 한몸을 이루는 방식으로 기반시설과 건물을 지었습니다.”
송 소장은 한양도성이야말로 이러한 특성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세계적 유산이라고 강조한다. 조선 태조가 개성으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1396년 축조된 한양도성은, 세종 때 국가체제 완성의 상징으로 대규모 개축이 이루어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크게 파괴됐던 것을 숙종이 개축했고, 영조, 정조, 순조, 고종까지 각 시대의 재료와 공법을 이용해 쌓아 그 역사가 담겨 있다. 20세기 이후도 마찬가지다. 일제 침략과 한국전쟁,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라 도성이 수난을 겪었다. 1907년 남대문 좌우의 성곽이 해체되고, 경성운동장이 들어서면서 동대문 남쪽 이간수문 자리의 훼철이 이루어진 것을 비롯해 재개발 광풍에 온갖 시련을 겪었다. 이러한 시련의 흔적은 이간수문과 남산 회현자락의 조선신궁 배전터 발굴 등 다양한 발굴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한양도성은 평지와 산악, 암반 구간 등 자연지형에 맞는 다양한 기술로 축조되어 땅과 한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도성의 몸엔 이전 시대의 성곽 축조기술과 조선왕조 500년, 20세기 이후 격동의 100년 역사가 새겨져 있어요. 그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한양도성 유네스코 등재 위해선 그는 요즈음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위한 준비작업에 분주하다. 서울시의 등재신청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가장 중요한 신청서 준비를 총괄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주 신중하다. 등재를 위해선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며, 특히 이 작업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데 자신이 너무 부각되는 것 아니냐는 부담 때문이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는 매년 1개국이 1건만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은 매년 1월 이루어지며 이듬해 6월 세계유산회의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작년 1월에 신청한 남한산성이 올 6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고, 올 1월엔 충남 공주, 부여 등 백제역사유적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했다. 내년 1월엔 한국의 서원을 신청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한양도성을 우선 등재 대상으로 결정하면, 2016년 1월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2017년 6월에 등재여부가 결정된다. 아직 거쳐야 할 일정이 많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선 두 가지 중요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그 유산이 세상에서 독보적이면서도 후대에 계승할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는, 이른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입증해야 한다. 송 소장은 역사학계와 건축사학계, 고고학계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이 부분에 대한 가치는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말한다. 둘째 요건은 2012년 유네스코가 채택한 역사도시경관에 대한 권고안을 충족하는 것이다. 이 권고안은 유산이 시민들의 삶에서 고립될 수 없고, 특히 도시유산의 경우 시민들의 삶에 바람직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보호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한 보존을 넘어 실제 주민들의 삶에서 살아 있다는 무형의 가치를 담는 작업으로,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고 송 소장은 강조한다.
그는 등재신청서 중간보고서 작업에 피치를 가하고 있다. 서울시는 오는 10월까지 중간보고서를 완료하고, 내년 2월 한글신청서를, 내년 10월엔 영문신청서를 작성해 2016년 1월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송 소장의 어깨가 무겁다.
“성곽 자체의 원형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와 함께, 도성에 인접해 있는 완충구역에 해당하는 지역이 유산과 공존할 수 있도록 도시재생을 해나가는 방법 등의 관리계획을 도시유산으로서의 가치와 통합해 나가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송 소장은 서울이 더 매력적인 도시가 되려면 역사적 유산과 가치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는 서울의 가치와 매력에 주목할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새로운 100년에는 이를 회복하고 소중하게 대하면서 정체성과 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세계유산 등재만큼 중요한 일이죠.”
<송인호 서울학연구소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