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물·숲·신전…가난하지만 영혼은 풍요로운 ‘신들의 나라’
인도양의 빛나는 섬 스리랑카(Sri Lanka)
바위 위 요새같은 8대 불가사의 시기리야 궁전
스리랑카불교의 시작점 聖地 미힌탈레
중세건축술 · 양식 · 불교미술의 보고 폴론나루와

곳곳에 예수상 등 동서문화 접변 흔적 가득
의료 · 대학교육 무상…가난함 속 여유로움 눈길
그무엇보다 가장 빛나는 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글ㆍ사진 콜롬보=이형석 기자]
서쪽으로는 언제라도 덤벼들듯 거칠게 일렁이는 검은 빛의 아라비아해를 마주하고 있다. 콜롬보에서 보는 바다의 표정은 위압적이다. 남으로는 보는 바다는 언제라도 보듬어 안아줄 듯한 청량한 푸른빛의 인도양이다. 스리랑카의 남단으로부터 650㎞ 건너에는 몰디브가 있다.

스리랑카의 내륙에선 왕복 1~2차선의 좁은 차로 양편으로 끝없이 숲이 이어진다. 한국에서 보던 나무들과는 사뭇 다르다. 키가 크고 몸집은 두텁다. 죽죽 뻗은 것도 있고 베베 꼬인 것도 있다. 서로 어울려 이룬 숲의 모양새가 각양각색, 기묘하고 신비하다. 신호등도 없어 택시인 삼륜차와 낡은 버스와 승용차가 엉키기 일쑤고, 운전자들은 자동차 경적을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좁은 차로는 보통 시속 30~40㎞, 기껏해야 50㎞이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느림’은 여유다.

 

차로 양편으로 늘어선 숲은 때때로 마치 바다와 같은 호수의 비경을 선사한다. 스리랑카에선 예로부터 지방의 호족이라 할만한 권세가들이 커다란 인공 호수를 조성했다고 한다. 스리랑카 마지막 왕국의 수도라는 내륙의 도시 캔디에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를 낀 리조트나 호텔이 적지 않다.

콜롬보의 공항에서 내려 대개는 버스나 승용차에 올라타고 여정을 시작할 이방인의 눈에 이채롭게 다가오는 또 다른 것은 어느 동네에서도 마주칠 수 있는 신상이다. 그저 ‘불교국’으로만 알고 이땅을 찾은 이방인에게 눈만 돌리면 언제라도 마주칠 수 있는 불상은 짐작대로일테지만, 적지 않게 서 있는 예수상이나 성모상은 뜻밖이다. 스리랑카 인구의 70%가량은 불교도지만, 힌두, 이슬람, 가톨릭, 개신교도들도 적지 않다. 힌두교는 인도 이주민, 이슬람교는 아랍 무역상, 기독교는 서방의 점령과 동서 문화 접변의 흔적이다.

이곳 신들의 솜씨를 느끼게 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아이들의 웃음이다. 이 아이들을 빚어놓기 위해 이곳의 신들이 그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소년과 소녀는 조각같이 잘 생기고 예쁘다. 그 얼굴 위에 퍼지는 웃음은 하늘의 것인가 싶다. 어느 곳에 가든 아이들은 낯선 땅에서 어색해하고 피곤해하는 여행객들을 손을 흔들며 웃음으로 맞는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흰 교복을 입고 크리켓을 하는 소년들을, 주말이면 사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 ‘스리’(Sri)는 ‘빛난다’, ‘랑카’(Lanka)는 ‘섬’이라는 뜻이다. 이 섬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아이들의 웃음이다. 교복,예복,일상복까지, 흰 옷을 사랑하는 스리랑카의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에선 가난의 표정이 쉬이 읽히지만, 숱한 신들을 거느린 영혼과 정신은 섬기는 신의 수만큼이나 풍요로로울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의료와 대학교육까지 무상인 시스템이 ‘가난한 여유’를 만들어내는지도 모르겠다.

인도양의 숨은 보석, 고요와 자비의 나라 스리랑카는 가난함 속에서도 영혼의 풍요로움을 잃지 않는다. 스리랑카 담불라 지역 중앙 마탈레에 있는 시기리야의 바위궁전 밑에선 짐작도 못할 경치를 꼭대기에 숨기고 있다.

▶시기리아 바위궁전=단연 압권은 스리랑카의 한가운데 있는 담불라 지역에서도 중앙 마탈레에 있는 시기리아의 바위궁전이다. 밑에서 보면 높이 200m높이의 암반 고지대이다. 겉에서 보면 그저 거대한 바위 덩어리인 이곳은 밑에선 짐작도 못할 경치를 꼭대기에 숨기고 있다. 주차장에서 바위 바로 직전까지는 계단과 연못, 해지, 수로 등으로 이루어진 정원터가 남아있다. 지금도 수로와 분수 장치들은 지금도 작동할 정도로 물을 끌어올리고 순환시키는 기술이 1500년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바위 옆 벽면을 따라 놓인 계단과 경사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여인들이 그려진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원래는 500명의 선녀의 그림이 길이 140m 높이 40m에 이르도록 바위에 그려져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대부분 지워지거나 없어지고 몇 개만 남아있다. 남아있는 그림을 보면 1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고 색감이 아름답다. 그림에서 가슴을 드러낸 여인이 보다 지체가 높은 쪽이라고 한다. 바위 벽면을 따라 오르는 길에 담도 있는데, 여기는 벽화가 해를 받으면 그대로 비춰질 정도여서 ‘거울벽’이라고 불린다. 벽화와 거울벽을 거쳐 철계단을 통해 꼭대기에 오르면 드디어 궁전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면적이 약 1만5000㎡로 국제 규격의 축구장 2개쯤을 합한 정도다. 여기에 성벽과 정원, 수영장 등 벽돌로 쌓아올린 터가 보존돼 있다.

이 바위궁전은 5세기에 카샤파왕이 지은 것으로 돼 있다. 전설에 따르면 카샤파왕은 후궁의 소생으로 정실 태생인 동생 목갈라나에게 승계될 왕위를 뺏고, 그에 대한 복수가 두려워 수도를 시리기아로 정하고 천혜의 요새인 바위 위에 궁전을 지었다고 한다.그러나 내용이 약간씩 다른 전설들도 몇 개 더 있는데, 호색한인 카샤파왕이 쾌락의 천국을 위해 지었다는 설도 있고, 아버지의 뜻을 이어 건조했다는 버전도 있다. 어느 것이나 동생 목갈라나가 형에게 복수해 다시 왕위를 빼앗고,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며 바위궁전은 승려들의 거처로 했다는 결말로 맺는다. 이후 16세기까지 이곳은 승려들의 기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과 인간의 솜씨가 완벽하게 조화된 곳으로 꼽히는 이곳은 한때 세계의 8대 불가사의로 꼽혔으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시리기야는 사자의 바위라는 뜻으로 바위 궁전으로 향하는 계단의 입구에 있었던 거대한 사자상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사자상에서 두 개의 발 부분만 남겨져 있다. 

시기리야 바위궁전을 오를 때 벽면에 그려져 있는 여인들 벽화(위
부터)와 미힌탈레의 석탑, 캔디시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등이 스리랑카의 빛나는 보석들이다.

▶미힌탈레=스리랑카의 북서쪽에 있는 아누라다푸라는 폴론나루와로 수도가 옮겨졌던 2세기동안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인 1400년동안이나 중세의 수도였다. 미힌탈레는 아누라다푸라로부터 12m가 떨어진 곳으로 인도로부터 불교가 첫 발을 내딛은 지역으로 유명하다. 불교도가 70%인 스리랑카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진다.

부처는 생전 스리랑카를 3번 방문했는데, 그의 발길이 닿은 16곳은 성소가 됐으며, 그 중의 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욱 유명한 것은 인도 아소카왕의 아들인 마힌다가 승려가 돼 아버지의 명으로 스리랑카에 불법을 전하기 위해 기원전 237년 이곳에 온 사실이다. 마힌다는 데바남피야 티사 왕을 만나 설법을 했으며 이에 감명받은 왕은 불교에 귀의한다. 스리랑카 불교의 시작이다. 왕은 마힌다에게 이곳의 68개 동물과 승원을 기증했고, 당시의 유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1800여개가 된다는 계단을 오르면서 기원전 1세기에 세운 칸타카 치티야의 불탑과 암바스탈라 대탑 등을 만날 수 있다. 꼭대기에는 부처의 머리카락을 모셔뒀다고 전해지는 마하세야 불탑이 있다. 이곳은 최고 번영기에 1만1000여명의 승려가 거주했다고 한다. 수도원 및 승려들의 생활터를 지나 탑 아래까지 오르면 탑보다 먼저 여행객을 반기는 것은 원숭이들이다. 여기저기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나무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원숭이는 미힌탈레의 또다른 볼거리다. 

▶폴론나루와=행정수도 콜롬보에서 동북쪽으로 216㎞떨어진 폴론나루와 역시 담불라 지역으로 시리기야와도 가깝다.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싱할라 왕조의 수도였다.

12세기 수도원 유적군이 있는 랑카틸라카와 거대한 양각 석불상이 있는 갈 비하라야가 전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랑카틸라카는 거대한 벽돌구조로 돼 있는 곳으로 스리랑카의 중세 건축술과 양식, 불교 미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지다. 당시 7층 건물인 궁전터와 그것을 둘러싼 사방의 불상이 있다. 이 중에 머리가 없는 입불상은 뒤 벽면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건물 전체의 엄중한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과거 석가모니의 치아사리가 있었다는 불치사탑 하타다게, 해를 받으면 반짝이는 양각 불상, 높이 13.7m의 소승불교탑 키리 위하라, 열반상 좌상 입상이 있는 갈 위하라 등이 있다. 갈 비하라야에는 길이 51mm, 높이 10여m 높이의 바위를 깊이 4m이상 깎고 쪼개서 조각한 거대한 부처의 좌상과 입상, 와상이 조각됐다.

스리랑카에서 발을 딛는 곳은 셋 중의 하나다. 물이거나 숲이거나, 유적이다. 수천 수백년의 이야기를 간직한. 신이 빚은 땅과 인간이 지은 것들이 어우러진 곳이다.

suk@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