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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신 or 배신…김우중 vs 이헌재의 운명적 충돌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15년 만에 대우패망 비사를 직접 언급하면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의 애증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두 사람 인연의 출발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7년 대우를 창립한 김 전 회장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선봉을 맡는다. 이 때 이 전 부총리는 대통령경제비서실에 근무했다. 대담집에서 김 전 회장은 박 대통령과 잦은 만남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경제비서실의 30대 관료이자 김 전 회장의 경기고등학교 후배였던 이 전 부총리와도 자연스레 인연을 맺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회장은 1979년 율산 사태로 관복을 벗은 이 전 부총리의 후원자 역할을 자임했다.

율산 사건 직후 이 전 부총리는 미국식 기업 구조조정의 산실인 보스턴대학 경제대학원에서 수학한다. 이때 김우중 전 회장은 이 전 부총리의 유학 생활을 적극 지원했다.이 전 부총리는 유학생활 직후에는 1982년부터 대우에서 4년여간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김 전 회장을 수행해 사업 현장을 돌아다녔다.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을 함께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전 부총리가 관복을 벗게 된 율산 사건이 언뜻 대우와 닮았다. 율산그룹은 금융부채 및 방만한 기업 확장으로 인한 자금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율산그룹은 정부의 구제금융까지 받았지만 단기 채무를 갚는 데만 이를 소진, 결국 회사를 살려내지 못한다.

이 전 부총리가 한국신용평가 사장을 거쳐 IMF 직후 김대중 정부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총괄하는 금융감독원장으로 공직에 복귀한다. 당시 김 전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대우가 IMF 사태 여파로 자금난에 봉착하면서 김우중과 이헌재는 처지가 바뀌었다.

김 전 회장은 일단 일을 벌리는 스타일이다. 대담집에서도 김 전 회장은 고도성장과 위험관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반면 국가경제 위기 상황에서 경제사령탑에 오른 이 전 부총리는 만큼 철저히 위험관리에 무게를 뒀다. 이 전 부총리는 대우 해체 직후인 1999년 “대우사태는 기업회계 투명성 등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며 “김 전 회장에게 대우의 정확한 사정을 국내외에 알리도록 요청한 적이 있으나 결국 성사되지 못해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직후 두 사람의 경제 철학이 뚜렷하게 달랐던 것은 물론 인간적 신뢰조차 미약했음을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된다.

재벌 회장과 청년 관료였던 두 사람은 40여년이 지나며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김 전 회장은 대우 몰락 후 해외를 전전하고 있다. 분식회계와 횡령, 재산 등으로 인한 처벌은 사면받았지만 여전히 17조여원에 달하는 추징금은 미납 상태다. 반대로 이 전 부총리는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 걸쳐 ‘이헌재 사단’을 구축하며 대한민국 경제계의 거물이 됐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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