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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문호진> 금기와 성역의 잔혹사
소설가 황석영은 작가를 ‘당대의 한계와 금기를 깨뜨려 일상화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영화 감독에게도 적용되는 말 일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이어 지금 ‘군도:민란의 시대’로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오른 윤종빈 감독은 9년전 금기시되던 공간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병영의 부조리를 묘사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이다. 갓 대학을 나온 가난한 무명감독 시절이라 어렵사리 마련한 2000만원으로 찍은 첫 장편이다. 윤 감독은 대물림되는 내무반내 폭력, 비인격적이고 강압적인 병영 문화의 그늘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를 오가는 청춘들의 비극적 현실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실제 병영에서 촬영해 사실감이 더한다. 당시 군 당국은 ‘병영의 민낯’을 드러낸 이 영화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사전 협의한 내용과 다른 시나리오로 촬영됐다며 따져 들었다.

국방부와 육군은 지금 MBC의 연예인 군 체험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 있어서다. 그러는 사이 육군 22사단에서는 집단따돌림을 당하던 임 병장이 가해병사에게 총기를 난사했고 28사단에서는 윤 일병이 선임들의 악마같은 가혹행위로 숨졌다. 군이 9년전 자신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혁신에 나섰다면 윤 감독의 영화보다 더 끔직한 작금의 ‘병영 잔혹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은폐ㆍ축소를 기도하며 진실을 덮어버리려는 고질병이다. 기밀과 보안을 전가의 보도 처럼 휘두르며 외부 시선을 차단하는 장벽을 쌓는 데 급급하는 사이에 반인권적이고 엽기적인 폭력성이 병영을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군 처럼 성역과 금기가 차고 넘치는 공간이 종교다.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대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일군 조용기 목사가 교회돈을 쌈짓돈 처럼 여기다 이런 저런 송사에 휩싸여 있는 것도 견제 장치가 무력화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옥성호는 올초 강남의 대표적 교회인 사랑의교회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 ‘서초교회 잔혹사’를 출간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사랑의교회 설립자인 고(故) 옥한흠 목사는 평신도의 영성을 깨우는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창시한 개신교계의 거목으로 대형교회의 악습인 ‘2세 세습’을 하지 않고 조기은퇴해 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2대 목사가 수천억원대의 교회 건축 등 외형 성장에 치중하면서 옥 목사가 쌓아올린 30년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와중에 2대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이 드러나고 정치깡패 출신의 용팔이가 등장하는 등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기도 한다. 옥성호는 소설에서 탐욕과 위선으로 얼룩진 대형교회의 치부를 현미경처럼 들여다 본다. 종교의 본질에서 일탈한 목회자가 ‘하나님의 뜻’을 구실로 전횡을 일삼으며 타락해가는 ‘교회 잔혹사’를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금기와 성역은 폐쇄성을 동반하며 필연적으로 위선과 거짓을 양산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역으로 치부되던 교황청 소속 바티칸 은행의 환부를 도려내는 결단성을 보인 것도 이런 폐습을 단절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각종 금기와 성역이 ‘상식의 관’을 통과하며 정화되도록 ‘부릅뜬’ 시민의식을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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