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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서방 ‘문명 대충돌’ 위기…중동 긴장 고조
[헤럴드경제=천예선ㆍ문영규ㆍ강승연 기자]서방과 이슬람의 21세기판 ‘문명 충돌’이 본격 점화되고 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보코하람, 이슬람국가(IS), 하마스 등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공격에 맞서 서방의 공동 대응이 예고되면서다.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1996년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냉전 이후 이념이 지나간 자리에 종교적인 문명이 새로운 충돌의 불씨가 될 것으로 예언했다.

그동안 잠잠했던 헌팅턴의 이 예언은 ‘세계경찰국가’ 미국의 ‘힘의 공백’을 틈탄 급진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득세로 중동전역에서 서방 대(對) 이슬람권의 전방위 대립으로 현실화되는 형국이다.

이라크의 이슬람 수니파 반군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미국인 기자를 무참히 참수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IS를 ‘암덩어리’로 비유하면서 대규모 보복 공습을 단행했다.

2차대전 전범국으로 외교 개입을 꺼려온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례적으로 이라크 무기지원을 전격 결정했다.

미국인 기자 참수 동영상에 영국인이 등장해 테러 위협이 고조된 영국에서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여름휴가를 중단하고 런던으로 복귀해 긴급 장관급 회의를 열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에 대한 서방의 대반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대표적인 서방과 이슬람 세력의 ‘문명 단층선’인 팔레스타인 지역 분쟁도 국제전 양상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서방권의 이스라엘 후원에 발끈한 하마스가 텔아비브 국제공항을 공격하겠다고 경고하자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IS는 한뿌리”라면서 싸잡아 비난했다.

중동 전역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서방 진영과 13억 이슬람 문화권 간 정면 충돌 위기감이 그 어느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과격 이슬람의 잇단 도발=이라크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40)를 참수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서방에 대한 도전장을 냈다.

프랭크 푸레디 켄트대 교수는 20일(현지시간) CNN 방송에 보낸 기고문에서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공개된 IS의 참수 영상은 미국 뿐 아니라 영국에 대한 직접적 경고이자 서방사회에 공포를 심는 IS의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공포 정치 전문가인 푸레디 교수는 지난해 5월 런던 동남부에서 발생한 영국 군인 리 릭비(25) 살해 사건을 언급하며 이번 사건이 “최근 잇달아 발생했던 영국인 지하디스트들의 납치ㆍ테러공격을 연상케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릭비는 이슬람 급진주의자자인 영국인 2명에 의해 참수 살해됐다.

IS가 지난 14일 시리아에서 납치한 일본인 사업가를 고문하는 영상에서도 조직원들은 영국식 영어를 사용했다. 일부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등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IS가 이번 폴리 참수 영상에 런던식 억양을 사용하는 대원을 내보낸 것엔 서방사회의 공포를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텔레그래프의 분석은 푸레디 교수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 같은 IS의 움직임은 최근 IS에 대거 합류한 서방 출신 지하디스트들이 온갖 잔혹행위에 앞장서고 있으며, 고국으로 돌아가 테러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푸레디 교수는 “2001년 9ㆍ11테러 이후 테러리스트의 개념이 외국인에서 자국민(home grown)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IS의 서방 지하디스트들이 출신국 국가 안보의 가장 중대한 위협으로 떠올랐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영국 정부는 현재까지 약 500명의 영국인이 IS를 비롯한 무장단체에 합류하기 위해 시리아로 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리아는 국내 IS 조직원 5만명 가운데 2만명이 외국 출신일 정도로 서방 지하디스트들이 제일 많이 몰리는 테러의 온상지다. 지난달에도 유럽, 체첸공화국, 중국, 기타 아랍국가 출신 외국인 1000명이 IS에 가담했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밝혔다.

일각에선 IS가 단순 무장단체 수준을 벗어나 정상 기능하는 국가 형태를 띠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IS의 세력확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오노 모토히로 참의원 의원(민주ㆍ중동조사위)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세력을 강화하는 IS의 통치가 잘 이우러지면서 그들의 거점에 의용병이 모이고 있다”며 “지배 지역 확대로 (중동) 국경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도 이라크 다국적군 사령관의 핵심 보좌관이었던 데이비드 킬컬른의 발언을 인용해 “IS는 알카에다의 전투력과 헤즈볼라의 행정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서 “IS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테러단체”라고 우려했다.

▶서방, IS 공동 대응 나설까=이라크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의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40) 참수로 서방권이 충격에 휩싸였다. 그동안 자국 경제 살리기에 천착했던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 서방국의 관심이 중동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이번 사건이 이라크 분쟁의 ‘게임체인저’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폴리 참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공격 목표가 서방으로 전환됐다는 의미”라며 “이번 사건으로 국제적인 대응 노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휴가 중인 오바마 대통령은 IS를 ‘암덩어리’에 비유하며 척결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휴가지에서 성명을 내고 “중동의 모든 국가와 국민 사이에 이 암덩어리(IS)가 더 이상 퍼지지 않게 하는 공동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21세기에 IS가 있을 곳은 없다”고 못박았다.

한발 더 나아가 미 공화당 내에서는 “참수는 미국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며 이라크 군사개입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CNN방송은 “IS 도발로 미군 공세가 더 강력해 질 것”이라며 “미 당국자들은 이번 미국인 기자 참수 사건으로 IS를 9ㆍ11테러의 주범인 알카에다와 동급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미국인 참수가 ‘집권 6년차 저주(sixth year itch)’에 빠진 오바마의 외교 정책에 ‘터닝 포인트’가 될지도 관심사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로 역대 최저다. 설상가상으로 퍼거슨 사건(10대 흑인소년이 경찰이 쏜 총에 사망한 사건)이 흑백갈등으로 비화되면서 오바마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욱 고조되고 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여론의 관심을 국외로 돌리기 위해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대(對)중동정책을 강경 노선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의 안보가 직접적인 위협을 받거나 대규모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만 군사력을 동원한다는 ‘신(新) 외교 독트린’에 따라 지상군 투입 등 전면개입에 반대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인이 참수됐고 추가 미국 기자 처형이 예고돼 있어 자국민 보호 명분이 마련된 상태다. 미국민 여론도 이라크 철군 3년 만에 단행한 이라크 북부 지역 공습에 대해 65%가 찬성했고, 이라크에 추가 행동을 해야한다는 여론도 한달새 39%에서 44%로 늘었다.

미국 뿐 아니라 서방권도 이슬람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의 위협론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여름휴가 중이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미국인 참수 사건 이후 즉각 업무에 복귀했다. 앞서 캐머런 총리는 IS 위협에 대해 “정치생명이 끝날 때까지 싸울 것”이라면서 ▷IS 방어 최전선 쿠르드족 지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IS 자금 흐름 차단 ▷이라크 새 총리와 이란을 포함한 다른 중동국가와 협력 등 대응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일도 이례적으로 이라크 무기지원을 결정했다. FT에 따르면 독일은 나치 시대 이후 해외파병 등 외국에 대한 군사개입을 꺼려왔지만 자국민 보호와 지역 안정을 이유로 무기지원을 정당화했다.

독일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과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은 “이라크 북부에서 IS와 싸우는 쿠르드 세력을 돕기 우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처럼 무기를 포함한 군사 장비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분쟁, 국제전으로 비화하나=대표적인 서방과 이슬람의 ‘문명 단층선’인 중동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도 국제전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 구리온 공항을 공격하겠다고 경고함에 따라 전 세계 항공기들을 대상으로 한 폭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서방 항공기가 공격당한다면 이는 이스라엘을 후원하는 서방에 대한 도발로 비쳐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를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제임스 라이트 폴리를 참수한 이슬람국가(IS)와 ‘한 뿌리’로 엮으면서 하마스를 서방에 대한 적대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

하마스 군조직 알카삼 여단의 아부 오베이다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간) 벤 구리온 국제공항 등 이스라엘의 전략적 지점에 대해 21일 오전 6시부터 로켓 공격을 실시하겠다고 경고했다고 AP,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하마스의 벤 구리온 공항에 대한 공격 발표는 알카삼 여단 사령관 모함메드 데이프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포격으로 데이프의 가족들이 사망하면서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나왔다. 사미 아부 주리 하마스 대변인은 “공격 당시 데이프는 그 장소에 있지도 않았다”며 그가 생존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3일 벤 구리온 공항에서는 하마스의 로켓포탄이 공항 인근 2㎞ 지점에 떨어지면서 하루 동안 80개의 항공편이 취소된 바 있다.

당시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안전을 이유로 자국 항공사의 24시간 공항 운항금지 조치를 내린 데 이어 조치를 하루 더 연장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이 지역에 대한 우회비행을 권고했다. 세계 주요 항공사들은 잇달아 이스라엘 노선 운항 중단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마스의 공격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IS의 미국인 기자 참수를 계기로 가자지구에서의 하마스의 행동을 IS에 비유하며 두 단체가 “같은 나무에서 나온 가지”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IS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경계심과 적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극단주의 성향을 보이는 하마스와 IS의 관계 설정을 통해 하마스에 대한 국제 여론 악화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지하조직을 다루는 전문매체인 멤리(MEMRI)에 따르면 가자지구에는 알 카에다 연계조직인 ‘자하필 알 타위드 왈 지하드 피 필라스틴’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IS의 전신이었던 ‘자맛 알 타위드 왈 지하드’와도 이름이 같다. ‘알 타위드 왈 지하드’는 ‘유일신(통합)과 성전’이란 뜻이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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