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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함영훈> 21세기 이순신, 한국 못 떠난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교황의 꼬리는 왜 이렇게 긴 지 모르겠다. 그 분을 성남공항에서 배웅한지 몇 일이 지났지만, 로마 교황청에서 하는 언행도 마치 우리 곁에서 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한국 소녀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로마의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의 성모마리아에게 봉헌했다는 소식에 산타마리아가 마치 명동성당 근처에 있는 어느 마을인양 가깝게 느껴진다.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단 것이 교황의 정치적 중립 준수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수 없었다”고 술회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 양반이 지금 경기도 안산 어디엔가 계시는 것 같다. 그 때 그 일을 떠올리면 다시 그날로 돌아온 느낌이다. 지난 14일 서울 중곡동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을 방문했을 때 방명록의 서명크기가 100원짜리 동전만큼 작았다는 얘기가 일주일뒤 재론된다. 참 작은 에피소드이다. “서명이 작은 것은 당신 스스로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뜻”이라는 강우일 주교의 설명을 듣고나니 또 작은 감동이 밀려온다.

프란치스코는 한국 공부를 참 많이 한 것 같다. 용산 참사 등 한국인 조차 잊을 뻔 했던 이슈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까지 일일이 탐문해놨다가 끝내 직접 만나 용기를 주었다.

이순신장군은 밥상머리에서 아들 이회가 퇴군을 조심스럽게 제안하자 “만일 (병사들의)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로 나타날 것”이라고 설득한다. 임금도 포기한 전투, 두려움에 떠는 수군 앞에서 충무공이 “똑똑히 보아라.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운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결연하게 외치자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리고는 몸소 대장선을 끌고가 전쟁의 선봉에 섰다. 왜군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청년이 대장선에 태워달라고 하자 흔쾌히 받아들이고 따뜻한 눈빛으로 대한다. 전투가 끝나고 청년이 토란을 건네자 “이렇게 먹을 수 있으니 좋구나”라며 진짜 아버지 같은 미소를 띄운다. 충무공은 “충(忠)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몇몇 친구들에게 ‘명량’을 보았는지 물어보았더니 아직도 보지 않은 자가 절반을 넘는다. 그럼에도 명량은 20일까지 1528만명이나 봤다. 이제 완연한 하향세를 탈 때도 됐는데, 쟁쟁한 신작들을 제치고 여전히 일일 관객 1위이다. 이순신이 21세기에 살아있고, 프란치스코가 여전히 한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느때 보다 우리는 참된 리더가 출현하기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방 군부대에서, 단식농성장에서, 공사장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올때마다 그들이 보고싶다. 낮은 자세로 임하면서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고, 어려운 일은 가장 앞장 서 실천하며, 나라가 좋아지면 그 덕을 국민에게 돌리고, 덜 갖춰진 구석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 지고 개선하는 리더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세태가 이러한 요즘,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겠다’던 초심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지지율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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