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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명예퇴직 金퇴냐·禁퇴냐
명퇴 권하는 사회, 최대 수억원 특별퇴직금의 유혹…
젊은 인재 유출·경영부담 딜레마…양극화도 큰문제


대한민국의 경영과 고용 관행은 1997년 ‘외환위기’로 혁명적 변화를 겪는다. 외환위기 전에는 퇴직이 곧 은퇴(隱退)였지만, 이후에는 이같은 정년퇴직과는 별도로 명예퇴직, 이른바 명퇴가 추가됐다. 이후 명퇴는 ‘지금 잠시 물러나는’ 금퇴(今退), 또는 ‘위로금을 받고 물러나는’ 금퇴(金退)로 분화된다. 강성노조의 반발과 감원에 대한 따가운 사회적 시선을 의식한 기업들의 고육지책이다. 

그런데 명퇴가 또다시 기업들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기업마다 명퇴 조건이 다양해지면서 또다른 양극화의 빌미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씨티은행은 명예퇴직 조건으로 최대 60개월치 급여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연봉이 1억원이라면 5억원을 목돈으로 받을 수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 계열 HMC투자증권도 최대 2억원을 넘게 퇴직위로금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감원인데, 막대한 인건비를 지출하는 아이러니다. 심지어 KT의 경우 대규모 감원으로 약 1조원의 적자를 내기도 했다. 이 쯤되면 경영부담을 줄이기 위한 감원이 아니라, 감원 자체가 새로운 경영부담이 되는 셈이다.


이렇다보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기업들은 명퇴를 실시할 엄두도 내기 힘들다. 높은 명퇴금에 대한 요구가 결국 명퇴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면서 인력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설령 당장 허리띠를 졸라 명퇴금을 두둑히 챙겨주더라도, 이 때문에 오히려 회사내 인재 유출로 이어질 위험도 크다. 다른 회사에서도 탐낼 인재, 즉 이직이 가능한 직원들이라면 목돈도 챙기면서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평소 만져보기 힘든 특별 퇴직금의 유혹은 어마어마하다. 적지 않은 기업이 신진대사를 위해 ‘낡은 피’를 내보내려다 당장 수혈해야 할 ’젊은 피‘를 잃게 되는 경우를 한두 번씩은 겪었다.

최근 지점 50여 곳을 정리하고 명예퇴직으로 직원 600여 명을 내보낼 예정이었던 한국시티은행은 명예퇴직 신청자 중 절반 이상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젊은 안력으로 알려졌다. 특히 각 부서의 중추라 할 수 있는 과장급 인력들이 대거 퇴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애초 대상자보다 많은 700여 명이 명예퇴직을 신청해 경영진의 고민이 오히려 더 커졌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퇴는 여전히 기업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경영효율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당장 고(高)임금 인력 정리를 통해 장기적으로 인건비 부담을 줄여준다. 또 기업 내 고령화, 중고령층 증대에 따른 인사 적체를 해소해 하위 직급 구성원에게 승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사기를 올리는 효과도 있다. 결국 일시적 비용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초과 정원을 해소해 조직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명퇴를 경영효율의 방법을 택하는 기업은 상당한 준비와 각오를 선행해야 한다. 남는 구성원에 대한 새로운 비전 제시, 일시적 비용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자금, 그리고 명예퇴직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초래되는 잡음 배제 등 3가지다.

유규창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명예퇴직에서는 기업이 꼭 필요한 인재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면서도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인재 연구나 고민, 노력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명예퇴직 시행 시 나오는 특별 퇴직금의 유혹에 우수 인재들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 대기업, 금융기관, 공기업들이 “위로한다”며 명예퇴직 대상자에게 퇴직금을 과도하게 지급하는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도한 특별 퇴직금 지급은 기업의 경영 수지를 악화시켜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다. 실제 은행들의 경우 경영 환경 악화로 수익이 반 토막 난 상황인데도 과거 호황 시절에 만들어진 ‘2~3년치 연봉’ 같은 특별 퇴직금 가이드라인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 받던 연봉에 따라 평균 4억~5억원의 목돈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기업도 이같은 관행이 만연하다. 그리고 이는 다시 일반 기업들의 퇴직위로금 과다지급의 빌미가 되고 있다. 반면 아직 대부분 사기업의 특별 퇴직금은 ’몇 개월치 수준‘으로 이 같은 수준에는 크게 미치치 못한다.

재계 관계자는 “퇴직금과 위로금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고, 잘 안 될 경우 법제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면서도 “이는 경영행위의 영역이라 왈가왈부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공기업과 사기업 간 ‘명예퇴직 양극화’는 이미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정부는 퇴직연금의 일시 지급보다는 비율을 정해 매달 받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한편 공기업과 금융권의 특별 퇴직금에도 과감히 칼을 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상윤 기자/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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