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젠 자산가들 5만원권 조달 서비스까지…‘陰地’로 포위되는 신사임당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최근 강남 소재 한 시중은행의 PB센터장은 평소 거래하던 자산가로부터 ‘색다른’ 주문을 받은 적이 있다.

5만원권으로 1억원을 교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어디에 쓰실거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그냥 집에 보관하려한다는 당황스런 답변을 들었다.

최근 은행 PB(private bank)센터에선 고액자산가들에게 금융투자상품 가입을 조건으로 5만원권을 조달해주는 신종 서비스가 등장했다.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발표 이후 금융거래 조사가 강화되면서 자산가들 중심으로 과세망을 피해 차라리 보관이 용이한 5만원권으로 인출해 놓겠다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과 무관치않다.


강남에 위치한 다른 은행의 PB센터장은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아지고 예금 금리도 바닥 수준이라 차라리 금고에 돈을 보관하겠다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5만원권은 한묶음에 500만원, 열 묶음인 한 다발이면 5000만원이고 두 다발해봐야 1억원이어서 과거에 비해 부피가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 센터장은 현재까진 지점에 5만원권이 부족하진 않지만 조만간 5만원권을 구하러 다녀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사과상자에는 1만원권으로 약 5억원, 007가방에는 1억원이 들어갔지만 5만원권은 사과상자에 25억원, 007가방에는 5억원이 들어갈 수 있다. 과거 1억원을 전달하려면 007가방 1개가 필요했지만 5만원권을 사용하면 양주 박스 1개로도 가능하다.

이 은행의 고객팀장은 “5만원권이 골드색이어서 때깔이 좋아 그냥 집에서 관상용으로 두겠다는 손님도 적지 않다”며 “또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최고액권인 5만원권의 인기는 계속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5만원권은 발행 5년만에 빠른 속도로 보급돼 유통화폐 잔액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국민화폐’로 자리매김했다. 6월말 기준 5년간 시중에 뿌려진 5만원권 총액은 45조396억2100만원으로 장수로 따지면 9억100만장이다. 20세 이상 대한민국 성인 1인당 평균 23장씩이나 갖고 있는 셈인데 정작 수중에는 5만원권을 만지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만원권의 하루 인출량에 제한을 걸어놓는 은행들이 늘고 있고, 명절 전후로는 품귀 현상마저 나타난다.

특히 5만원권의 발행규모는 계속 느는데 비해 환수율은 급격히 줄면서 행방이 더욱 묘연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만원권의 연간 환수율은 발행 첫해인 2009년 7.3%에서 2010년 41.4%, 2011년 59.7%, 2012년 61.7% 등으로 꾸준히 상승하다가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지난해 48.6%로 뚝 떨어졌다. 올 들어선 28.1%(상반기 기준)로 작년 같은 기간의 반토막 수준으로 급락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5만원권이 주로 사설카지노, 화상경마장 인근 은행 지점에 몰려있다는 동향은 보고받았지만 정확히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는 파악하기가 어렵다”며 “부자들이 5만원권을 자기 금고에 넣어두려는 추세도 5만원권 실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5만원권 발행 이후 개인금고 판매량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한 온라인 쇼핑몰에 따르면 한달 평균 30대 정도 팔리던 개인금고는 2010년에는 월평균 550대, 2011년에는 780대로 늘다가 올 1~5월엔 판매 대수가 1500대까지 증가했다.

gil@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