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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전창협> ‘사즉생(死卽生)’의 바다
시대는 공(公)을 호명하고, 공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의 한 극장. 영화를 보기엔 새벽이라고 해야 할 오전 7시 30분. 영화관은 남녀노소로 가득했다. ‘명량’은 오전 7시부터 다음달 새벽 0시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상영되고 있지만, 표는 많지 않았다. 명량이 한국영화사의 각종 기록을 깨고 개봉 12일만에 관객 1000만명을 넘은 것은 당연지사. 아바타가 갖고 있는 1362만명의 사상최고기록도 갈아치울 것이 유력하다.

영화 흥행의 요인은 여럿 있을 것이다. 12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선을 물리친 세계해전사에 기록된 ‘불가능한 싸움’이란 극적인 스토리, 러닝타임의 절반 가까이 이어진 영화 후반부 압도적인 해전장면이 여름 휴가철과 맞물린 점이 흥행의 요인으로 꼽힌다. 명량을 대적할 만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없었다는 점도 흥행에 한 몫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압도적인 흥행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리더십’을 흥행의 핵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충무공의 마지막 바다는 ‘노량’이었지만, 그가 가장 빛난 것은 ‘사즉생의 바다’였던 울돌목이었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은 단호하다. 명량해전 하루전.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하였고,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모두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균율대로 시행해 작은 일이라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기록했다. 당일날의 기록도 격정적이다. 영화에서도 묘사되지만, 두려움으로 머뭇거리는 거제 현령 안위에게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가서 살 것이냐”란 추상같은 호령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도 패배가 예상된 이 전투를 앞두고 인간으로 고뇌는 어쩔수 없었던 듯 보인다. 15일 기록에 “밤에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고 적고 있다. 명량해전의 숨막히는 상황을 서술한 16일 일기는 “차실천행(此實天幸ㆍ이번 일은 실로 천행이었다)”란 글로 마무리했다. 한편으로는 휘하의 장수들은 끊임없이 ‘승리가 불가능한 바다’로 끌고 가지만 그 역시 이 싸움에서 승리가 쉽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은 확실하다.

명량해전에서 충무공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바로 이곳에 있다. “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이 문제다.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로 나타날 것이다.” 명대사처럼, 그도 두려웠지만 사즉생의 각오로 불가능을 가능의 영역으로 바꿔낸 리더십에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는 왜선앞에 일자진(一字陳)으로 맞서는 장면이었다. 일렬횡대의 12척, 그 뒤에는 죽음의 바다가 펼쳐진 장면은 비장하고 장엄했다.

16세기 영웅이 21세기에 부활하는 지금, 우리 시대의 리더들에게 일자진을 펼칠 사즉생의 용기가 있는 지 국민들이 되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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