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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정재욱> 문제는 ‘대학’이라니까…
일전 지인들과의 모임은 중소기업 정책 간담회라도 참석한 듯한 분위기였다. 우연이었지만 중소기업 경영진, 정책 당국자, 전공 교수에, 말석이나마 언론인까지 한 두명 끼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중요하고 소중한 기업’이 중소기업이란 의미있는 우스개로 시작된 대화는 시종 열기가 뜨거웠다.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 이중 삼중의 규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도마에 올랐고, 갑론을박 많은 의견이 오갔지만 결론은 사람이었다. 필수 인력은 절대 부족한데, 도무지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IT업종에 몸담고 있는 참석 중소기업인이 전하는 ‘인력난 현장’은 대략 이런 모습이다. 우선 구인 광고를 내면 일단 지원자는 적정 수 이상 몰려온다. 먼저 서류를 검토하는 데, 이 때 조금이라도 이름이 있는 대학을 나온 지원자는 일차 탈락 대상이다. 뽑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써 먹을만 하면 훌쩍 떠나버린 게 어디 한 두번이었나.

그렇다고 어렵게 뽑은 다른 입사자들이 열심히 일해주는 것도 아니다. 이들 역시 이곳은 임시 정거장일 뿐, 호시탐탐 더 나은(?) 직장으로 떠날 기회를 엿보고 있단다. 회사 입장에선 실력을 갖춘 고졸자가 최선이지만 어림도 없다. 쓸만한 고졸자는 다 대기업 차지다. 도대체 누구와 일을 하란 말인가. 오죽하면 이 회사는 기업 입지 조건이 좋은 디지털 단지를 버리고 임대료가 비싼 서울 시내 한 복판으로 근거지를 옮길 궁리를 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하면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될까해서다.

젊은이들이 왜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것일까. 그게 바로 대학 과잉에서 비롯된다는 게 중소기업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우리의 대학 진학률은 70%가 훨씬 넘는다. 불과 7,8년 전만해도 80%를 상회하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졌지만 이 정도만 해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영국 등 주요국의 진학률은 40%에 불과하다. 대학 진학률이 이렇게 높으니 일자리 미스매칭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명색 대졸자들인데 기술을 배우거나 험한 일, 힘든 일을 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묻지마 대학진학’이 급기야 고용 구조 왜곡을 초래하고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하긴 중소기업 인력 문제 뿐만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윤 일병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전근대적 병영문화도, 10대 소녀들이 끔찍한 살인에 가담한 것도 대학이란 괴물 때문일지 모른다. 공교육은 붕괴되고 학교는 ‘대입 학원’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인성교육은 보고용 교과 과정에 구색으로나 남아있을 뿐 꿈도 꾸지 못하는 게 작금의 교육 현실이다. 이런 교육 환경이 폭력을 즐기는 ‘악마’를 키워낸 셈이다.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단지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직업 훈련중인 독일 중고생들의 말이 그렇다. 그들은 곧 세계적 강소기업의 주축이 될 것이다. 그게 흔들림 없는 독일 경제를 떠 받치는 힘의 원천이다. 한데 우리는 개개인의 적성은 아랑곳않고 오로지 대학만 고집하고 있다. 사회가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학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이미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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