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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임란 일찍 끝낼 기회 두 번 있었다
영화‘ 명량’흥행 돌풍…7년전쟁 재해석‘ 그러나 이순신이…’화제
옛문헌 통해 임란 - 동서전쟁사 비교분석…日보급로 차단기회 놓친 부산해전 후 회군…부산 집결 왜군 격파 조정 명령 반박 등…오판 · 실수로 가득한 인간적 면모 조명

민본중시 고뇌하는 이순신의 리더십…우리 현실과 맞물려 더 깊은 울림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김태훈 지음/일상이상
“적이 험고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니 경솔히 나아가 칠 수도 없다.(중략) 초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스스로 생각하니 나랏일이 어지럽건만 안으로 건질 길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랴!”(1594년 9월 3일, 이순신 ‘난중일기’ 중)

일본군이 조선땅을 유린한 임진왜란 발발 2년후. 7년간 계속된 난중에 혁혁한 전과를 올리던 해전의 영웅을 괴롭히던 번민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순신 전문가’로 꼽히는 김태훈은 ‘적이 험고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니 경솔히 나아가 칠 수 없다’고 한 토로를 실마리 삼아 2년전의 전사(戰史)거슬러 올라간다. 1592년 9월 1일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장사진으로 돌격하여 부산포에 정박해 있던 470여척의 적함 중 100여척을 불태워버렸다.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다음날인 9월 2일 뱃머리를 돌려 자신의 본진인 전라좌수영이 설치된 여수로 귀환했다. 부산이 어디인가. 일본군이 조선을 거쳐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 첫 발을 디딘 거점이 아닌가. 부산해전에서 성공한 이순신의 조선수군이 조금만 밀어붙였더라면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상륙거점을 봉쇄해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고 전쟁을 종결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의 선택은 ‘귀환’이었다. 이것은 전쟁초기인 1592년 4월30일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서 일본군의 발호와 조선의 속수무책에 대해 “지난번 부산과 동래의 연해안 여러 장수가 배를 잘 정비하고 바다에서 가득 진을 벌여 엄격한 위세를 보이면서 정세를 보아 전선을 병법대로 알맞게 진퇴하여 적을 육지로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더라면, 나라를 욕되게 한 환란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이순신 스스로가 내린 진단과도 어긋나는 결정이었다. 김태훈은 “이순신이 그토록 많은 전투에서 이겼는데, 왜 전쟁이 1년, 2년도 아닌 7년 동안 이어졌을까”라며 부산해전에서의 승리 후 여수로의 회군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결정이라고 봤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나친 신중함으로 말미암아 승산 있는 싸움을 지레포기한 ‘오판’이었던 셈이다. 

최근 영화 ‘명량’의 기록적인 흥행을 발화점으로 문화계 전반에 ‘이순신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이순신의 전과와 업적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김태훈의 책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일상이상)가 출간됐다. 사학자나 역사전문가가 아닌 경제인 출신의 ‘아마추어’가 썼지만 ‘난중일기’ ‘선조실록’ ‘징비록’ 등의 번역본과 원문을 꼼꼼히 살피고 각 문헌간 사건과 표현을 면밀히 비교 대조해 오류와 의문, 상호모순을 짚어가며 이순신이 치른 7년간의 전쟁을 재구성했다. 웬만한 학술서에 맞먹는 무려 736쪽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무협지같은 생동감 있는 필치로 기술했다. 이 책은 ‘성웅’으로 신격화된 ‘무오류의 구원자’가 아닌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실수도 가진 ‘진짜 이순신’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시도다. 저자는 이미 2004년 이러한 모색의 결과로서 ‘이순신의 두 얼굴’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으며, 이번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는 10년전 저작의 개정증보판격이되 새로운 내용을 더했다. 

영화 ‘명량’의 흥행이 문화계 전반에 이순신 신드롬을 낳고 있는 가운데, 기존 문헌을 꼼꼼히 살펴 전쟁 영웅과 인간 사이의 ‘진면목’을 조명한 책‘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가 출간됐다.

저자가 이순신의 영웅적인 전과와 행적을 집필하면서도 기존의 학설이나 시각과는 다르게 펼치는 주장은 “이순신에게는 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호기를 두 번 꼽는데, 한번이 1592년 부산해전 승리라면, 또 한번은 1594년 명이 개입해 일본과 강화협상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당시 일본군은 서울에서 내려와 부산포에 군력을 집결시켜 진을 치고 있었는데, 조정은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진격하기를 명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지형과 전략상의 이유를 들어 안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저자는 가상의 진격항로를 예시하고 수군에 의한 부산포 공격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로마군이 갈리아 연합군의 숨통을 끊은 카이사르의 알레시아 전투도 근거로 들었다. 

이순신은 부산을 장악하는 대신 수군만의 단독 작전의 불가함을 내세워 수륙합동공격을 조정에 요구했다. 하지만 저자는 당시 정황상 이순신의 수륙합동공격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봤다. 이 밖에도 이 책은 당시 조정이 이순신의 패전으로 보았던 장문포전투가 적어도 무승부였다고 규정했으며, 3도수군통제사의 사임을 자처한 것이 정적이었던 원균을 제거하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다고 기술했다. 또 이덕형의 모함으로 이순신이 실각하고 하옥됐다는 기존의 학설도 ‘선조실록’상의 원문을 잘못 해석해 오해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순신이 실수와 오판을 할 수 있는 인간임을 아울러 보여준다. 그러나 영웅이자 구원자로서의 풍모가 색바랠 수는 없다는 것이 또한 책의 핵심이다. 그래서 전란의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고, 전후엔 입맛대로 공신선정을 한 비겁한 위정자로서의 선조와 비교하며 오늘날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주는 교훈을 끌어냈다. 저자 김태훈은 전국은행연합회 기획조사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10여년전 이순신에 빠져들었고, 실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없음에 놀라 회사 다니는 틈틈히 연구를 하게 됐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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