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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선임기자의 세상읽기> ‘엄마부대’ 의 분노
엊그제 읽다 눈이 아린 뉴스 하나가 아직도 뇌리에 남습니다. 어떤 엄마가 입대하는 아들과 약속하길 무슨 문제가 있으면 전화로 살짝 ‘천국’이라고 말하라고 했다더군요. 암호로 말입니다. 그러면 잽싸게 구출 면회를 가겠노라는 겁니다. 며칠 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군 수뇌부를 향해 질타를 쏟아냈습니다. 그 자리에서 신고라도 제때 해 안 죽게 하려거든 스마트폰이라도 쓰도록 하라고 다그칩니다. 그런데 6일 밤 뉴스에 실제로 그걸 검토 중이라는 국방부입니다. 병사들 스트레스를 풀어주자는 의도라는 데 참으로 기가 막히는 군 당국입니다. 

국회에서 공개된 사망한 윤 일병

우리 군대의 민낯이 참으로 딱하고 부끄럽습니다. 첨예한 남북대치, 70년이 다 돼가는 분단사에서 국가안보를 총책임진 군대의 모습이라곤 도저히 미끼지 않습니다. 구타사건, 인권모독 등등 창군 이래 끝도 없이 이어져온 일입니다. 쉬쉬하고 묻고 묻히고 참으로 익숙해져 온 집단이란 걸 50대 중반인 기자의 선후배들은 뚜렷이 기억합니다.

더러는 그럴 겁니다. 군대라면 적어도 군기하나는 제대로 잡아야 한다고. 맞습니다. 임전무퇴 불굴의 성웅 이순신 장군도 군기하나는 제대로 잡았다고 합니다. 군기를 업신여기거나 병영을 가벼이 하거나 백성을 우습게 생각하는 부하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엄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적어도 이순신 장군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군인에게는 자식 이상으로 뒷바라지하고 힘과 용기를 북돋웠다는 사실입니다.

딱하게도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 사망한 윤 일병에 대한 검시결과가 실렸더군요. 차마 두 눈을 뜨고 읽어 내려가기 어려웠습니다. 좌우 갈비뼈 14개가 부러졌고, 비장은 파열된 상태였고, 머리에서 가슴과 배 그리고 다리로 이어지는 상하반신 전체가 검붉은 피멍으로 뒤덮여 있어다는 점에서 출혈 등에 따른 쇼크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는 겁니다. 

군복 차림으로 보아 수년전 군내무반 얼차려 현장

국방과학수사연구소가 검시를 주도했는데 설마 있는 그대로였겠지요? 혹 축소하거나 아니면... 하도 세상이 불신덩어리로 변하다보니 솔직히 일순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국방부 측은 직접적인 사인은 기존에 밝힌 대로 ‘기도폐쇄에 의한 뇌손상’이라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언뜻 심각한 용어처럼 보이긴 하지만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뇌손상으로 이어진 기도폐쇄의 이유가 무엇인지가 이 문외한 기자에겐 그 게 더 큰 의문이고 또 사건의 본질이 아닌가 싶은데 말입니다.

윤 일병 (구타)사망사건이 군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으로 이어지나 봅니다. 다행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만 정신들을 차리는 건가요. 윤 일병 같은 젊은이들이 어디 한둘이었겠습니까. 정부가 군인 연금에 대해서도 손을 보겠다고 합니다. 이 땅의 직업군인들에게는 적잖은 쇼크일 겁니다만 스스로 빌미를 제공했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국민들은, 특히 애꿎게 병졸의 경험을 가진, 그리고 앞으로 그러해야 할 이들의 입장에선 당연해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애국충정으로 오롯이 한 몸 바치겠다는 필사의 각오로 군 생활을 하거나 전역한 장교와 간부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순신 장군의 후예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전쟁도 제대로 치러보지 않고 국방세금으로 똥배 채우고 거들먹거리며 군 생활 무탈을 기원하며 기분 좋게 마감한 이 땅의 장교와 간부들이 버젓이 숱하게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런 이들이 존재했기에 오늘 이런 불행한 판이 벌어지고 만 것이고요.

한심한 일 하나 더 있습니다. 엊그제 국회국방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 부대를 찾아 현장 조사를 마친 뒤 부대 장병들과 “화이팅”을 외치며 찍은 기념사진이 7일 조간을 장식했습니다. 당연히 논란이 커집니다.의기소침한 아들 같은 장병들에게 힘을 북돋워주기 위해서라지만 기자가 보기에도 한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긴 초상집 가서 히죽히죽 인증샷 날리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요.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윤 일병 사망 부대를 찾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제 큰일입니다. ‘엄마’들이 두 팔 걷고 아들 대신 ‘그 곳’으로 가려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을 죽이는 그 곳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당신들을 못 믿겠으니 내가 대신 나서 본 떼를 보여 주겠다 이겁니다. 아들 지키러 일주일에 한 번씩은 그 곳에 꼭 가고 말겠다는 엄마들도 있습니다.

그 곳은 대한민국 군대이고 이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아들을 그 군대에 내보낸 대한민국 엄마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땅의 엄마 노릇 참 힘들다는 생각입니다. 두 눈에 눈물 마를 날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대부분의 엄마들은 40세 전후이고, 윤 일병 사망사고로 충격 받은 엄마들은 50세 전후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낙하산이 겁나서 그렇지 해병대보다 훨씬 막강하다는 ‘엄마부대’의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군 개혁 이 참에 제대로 해내야 나라가 살고 가정이 살 것 같습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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