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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박승윤> 휴가의 경제학
지난해 여름 신한은행에 다니는 친구와 점심 약속을 잡으려다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2주간 자리를 비우니 보름여 뒤 만나자는 말에 출장을 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출장이 아니라 휴가였다. 의무적으로 2주간 휴가를 가야 한다는 말에 ‘일에 문제가 있어 휴가 보내고 책상 점검하는거 아니냐’고 걱정까지 했다. 알고 보니 신한은행은 2011년부터 매년 2주간 휴가를 쓰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 기업 중에도 직원들에게 10일이 넘는 장기휴가를 보장하는 기업들이 꽤 된다. 두산은 그룹 차원에서 장기 집중휴가를 실시중이고 제일기획,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한화케미칼에 다니는 직원들도 휴가를 보름정도씩 즐길수 있다고 한다.

사실 법적으로는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에 다니는 입사 1년차 이상인 직장인들에게 연 15일 이상의 유급휴가가 보장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개인 필요에 따라 연중 아무 때나, 또 10일이상 장기간 연차를 내고 쉴수 있는 기업은 아직 많지 않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상사 눈치 안보고 필요하면 언제든 연차휴가를 쓴다지만 조직 문화가 딱딱하면 결국 움츠러든다. 그래서 연차를 활용한 장기 집중휴가를 실질적으로 시행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간이 1주일이냐, 2주일이냐는 휴식의 품질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1주일 휴가는 앞뒤 공휴일을 포함하면 9일인데 대개 3~4일간 가족여행을 가고 나머지 기간에는 방에서 뒹군다. 휴가 첫날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 마지막날 들어오는 스케줄을 잡는 직장인도 있지만 장기 여행을 하기에 일주일은 상당히 빠듯한 시간이다.

그런데 휴가 기간이 16일정도 되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할 수도 있고, 여유있게 해외 배낭여행을 떠날수도 있다. 단순히 쉬는게 아니라 계획을 세워 뭔가 결실을 거둘수 있는 뿌듯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심신을 재충전한 직원들의 창조적 아이디어와 생산성 향상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된다. 구글, 페이스북등 IT시대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직원들에게 자유로운 근무 여건을 조성해주고 거기서 활력을 높일수 있는 동력원을 찾는다. 우리 기업들도 이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책상에만 오래 앉아있는 ‘일벌레’보다 멀리 보고 크게 사고하는 창의적 인재를 키울 필요가 있다. 심신을 정화시키는 휴가는 그 일환이다. 주 5일 근무제도 초기에는 생산성만 떨어뜨릴줄 알았는데,어느새 일상이 되면서 지친 심신을 재충전해주는 ‘오아시스’로 자리잡았다.

제대로 된 휴식이 필요한 사람은 직원들보다도 최고경영진(CEO)이다. 올해는 대기업의 총수나 CEO들중 대다수가 휴가를 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기업의 장래를 좌우할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CEO들에게 휴가는 명징한 판단을 내리게 하는 윤활유다. 실적이 나쁘고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일에만 파묻히면 오히려 사고를 낼 수 있다. 며칠이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호젓한 곳에서 책을 읽거나 자연을 벗하는 것만으로 CEO가 그리는 비전이 더 명쾌해지고 커질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플루타르크는 ’휴식은 노동의 달콤한 양념‘이라고 말했다.

박승윤 산업부장/parks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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