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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방직업계 선구자’ 박용학 前대농회장 별세
향년 99세…무역협회장 역임…코리아헤럴드 민영화 주도


‘수출산업의 견인차’, ‘한국 면방업계의 선구자’로 불리던 박용학 <사진>전 대농그룹 명예회장이 4일 영면에 들었다. 지난 2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별세한 박 전 회장은 이날 오전 경기도 안성시 새사람수련원에 안치됐다.

박 전 회장은 사교적 재능이 출중해 한국무역협회 회장(1991~94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1980~83년), 한일경제협회 회장(1988~98년), 한중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민간차원의 대외통상 협력 및 경제외교를 통해 무역증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또 1988년 내외경제(현 헤럴드경제) 복간을 주도해 ‘코리아헤럴드 내외경제‘의 회장을 맡아 언론보국에 앞장섰다.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박 전 회장은 1946년 자본금 100만 원으로 대한계기제작소를 설립, 착실히 사업 기반을 다져 1955년에 대한농산이라는 무역회사를 차렸다.

고인은 1968년 쌍용그룹 계열사인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을 인수하며 대농그룹을 한국의 면방직업계을 선도하는 대표기업으로 키웠다. 1969년 미도파백화점을 계열사로 편입한 이후에는 유통 중심 대기업으로 거듭났다.

고인이 1989년 아들인 박영일 전 대농그룹 회장에게 경영을 넘긴 뒤 그룹은 미도파건설을 비롯해 10여개사를 설립·인수하며 확장을 거듭한 끝에 1990년대에는 재계 30위권 반열에 올랐다. 1989년 내외경제신문(현 헤럴드경제)과 코리아헤럴드를 인수, 미디어부문에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1997년 신동방그룹과 성원그룹의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를 막기 위해 약 1300억원의 거액을 쏟아부으며 위기에 봉착했고, 잇따라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결국 1998년 최종 부도처리됐다.

많은 후배 기업인들은 박 전 회장이 ‘인간 중심 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사업보국’을 거듭 강조하며 “기업은 바람직한 사회활동을 통해 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유족으로는 박영일 전 대농그룹 회장과 딸 선영, 은희, 경희 씨 등 1남 3녀가 있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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