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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신경영과 마하경영 사이…삼성 잃어버린 17년(?)
춘추시대 진(秦) 목공은 라이벌 진(晉)을 꺾으며 중국 최강자가 된다. 양국이 패권을 다툰 전투에서 목공이 승리한 결정적 계기는 인정이다. 이전 목공은 자신이 아끼던 말을 잡아먹은 야인 300명을 용서해줬는데, 이들이 은혜를 갚기 위해 전투에서 위기에 빠진 목공을 온 몸을 던져 구해내며 승부를 뒤집었다. 목공에 이어 패권을 이은 초(楚) 장왕의 절영(絶纓) 고사도 비슷하다. 인재에 인정을 베푼 덕분에 복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외환위기가 닥쳤던 17년 전 삼성은 조직 30%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그런데 당시 이건희 회장은 감원보다는 전환 배치로 효율을 30% 높이는 데 주력했다. 경영 합리화에는 인력 감축이 필연적이지만 경영이 조금 어렵다고 사람을 줄여 해결하겠다는 발상을 “안이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감원은 종업원들의 심리적 반발과 사기 저하를 일으킬 뿐 회사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유다. 이후 삼성은 상시 구조조정 체제를 유지했다. 덕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7년과 2008년, 유럽 재정위기가 터진 2012년에도 삼성전자 직원 숫자는 전년대비 ‘조용히(?)’ 줄었지만 요란한 구조조정은 없었다. 심지어 이 회장은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오히려 내수에 도움될 기업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최근 재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다. 그런데 선봉이 삼성이다. 대대적 비용절감, 본사직원의 대규모 현장배치, 희망퇴직 등은 21세기 삼성에서 처음 들어보는 말들이다.

물론 사정이 있겠지만, 우리 경제에서의 위상을 생각하면 ‘삼성도 줄이는데’라는 이유 만으로 다른 기업들의 감원과 내핍경영의 빌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아무리 어렵다지만 1997년 만큼 절체절명일까? 외환위기 때는 가계 저축이 많아 그나마 기업들의 감원과 내핍을 버텨냈지만, 지금은 높은 가계부채와 고령화로 가계가 어렵다. 기업마저 씀씀이와 일자리를 줄이면 우리 경제가 견디기 어렵다. 인건비 좀 줄인다고 중국 경쟁사보다 물건을 더 싸게 만들 수도 없고, 씀씀이 줄인다고 혁신적인 신제품과 신사업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툭하면 감원하던 미국 제조업보다 감원을 피하던 독일과 일본의 제조업이 지금 오히려 더 건재하다.

삼성은 지난 연말 임직원들에게 신경영 20년주년 특별성과급을 지급, 재계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마하경영 원년인 올 해, 구조조정의 칼을 들어 재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이 회장이 와병중이어서일까? 왠지 낯설고 씁쓸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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